주말 3
나잇살이나 먹어 그립다고 그러기가 뭣해서
그리움은 외로움이 아니라고
그리움은 옆이 비어서가 아니라 위가 열려서라고
그리움은 뒤돌아보자는 게 아니고 저기 저 가물거리는 것 눈 씻고 보자는 거라는데
그도 그렇겠다고 끄덕이는 이는 없고
모두들 픽픽거린다.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인데
“時下孟春之節에 氣體候一向萬康하옵시고 玉體錦安하옵심을 仰祝하나이다”로 시작하는
수적(手迹) 하나 받아보고 싶다.
가진 게 시간뿐인 사람은 갈 데가 없다.
여기저기 잔치도 많을 텐데
시간 없어 봉투만 보내는 사람을 환영하더라.
그래도 내가 가면 분위기 잡아줄 텐데...
서운하면 씹는 솜씨가 김립보다 못하지 않으니
우정을 위하여 나타나지 않는 게 좋지.
어제 십년 동안 팔리지 않아 표지 빛깔이 바랜 시집 하나 뽑았는데
오래 전에 나온 것을 정가표 고치지 않아 단돈 3,500원, 거저네.
도둑질하는 스릴로 얼른 품안에 넣었다가 책방 밖에서 다시 펴보는데
무슨 책이름이 ‘남몰래’로 시작하니 다시 가슴이 뛴다.
그런데...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맞는지 아님 ‘흘리는’이 맞는가?
너는
아프다고 한다
나만큼? 네게 말했었지
너는 아프구나, 남몰래 숨어 있는
우리는 모두 아프구나
가슴과 가슴 그 안에
손을 넣고 있어도
모자라는 듯한 덤덤한
우리가 좋아하는 그 曲을
듣고 있어도
‘짐노페디’ 말야,
그 곡은 만지면 없는
가만히 있으면 있는
뭐랄까 그게......
-김영태, ‘남몰래 흐르는 눈물 24’-
봄날 다 좋은데 알레르기 철이라서
눈물나고 잔기침 재채기 멈추지 않는데
음악회 간 게 아니거든 맘 놓고 기침하게.
숨기면 더욱 커져서 미치게 되니까
기침과 사랑 그건 숨기지 못하니까
괴로워할 것 없고 다 뱉게나.
그래도 너무 진한 건 진저리나니까
징그러운 건 동정 점수도 받지 못하니까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십니까?” 소리나 들을 테니까
여리게 파스텔 톤으로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가볍게.
죽은 자식 뭐 만지기로 한숨쉬지 말고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지내게 하고
이건 “그러면 안 돼”로 드는 예문인데
에그 그 주먹봉숭아 빛...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도종환, ‘봉숭아’-
생각날 때 있고
그래서 촉촉해지기도 하지만
방죽 무너지고 터져 나오는 홍수 같지는 않을 테니까
그저 이 정도로...
그대 다가오면
수문 연 듯
마른 강에 물 흐르네
비 머금은 하늘에서
님의 기척 느끼네
무슨 일이 있어 들릴 건 아니니까
두드릴 용기도 없고
내다보던 눈길과 마주쳐 손짓하면
“저 말입니까”라는 시늉하며 다가가는 거지.
이 나이 되면
굳이 깨울 것까진 없다고
받기 전에 끊은 전화처럼
그저 그 정도에서 멈춘다.
마음은 늘어진 가지만큼 많아도
흐르는 물 맬 수 없어
손 담그고 만져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