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벌판, 담장...

 


도심에서라면 진달래가 철수한 후에

시가전이 불필요하게 된 줄 알고

철쭉이 태만한 걸음으로 들어와 점령군 행세를 하지만

산에는 남향 기슭과 북향 골이 완연히 다르고 볕 안 드는 데도 많으니까

진달래, 철쭉, 산철쭉이 얼마간 피아 구분이 어렵도록 혼전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괜히 죄 많은 사람의 피가 그럴까 싶은 빛깔

철쭉 낯짝이 더 진하기야 하고

사포(砂布, ‘뻬빠’라고 그랬지)로 문지른다고 사라지지 않을 주근깨가 박혔지만

별종이 많으니까 그렇게 구별할 것도 아니고

꽃잎 베어 물 때 조심하셔.

아무튼...

화냥기로

오일장에 나온 잠옷 같은 촌스런 분홍색으로

산과 도시를 도배.

(아니다, 신록과 함께 왔으니까 꽃무늬 프린트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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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텍사스에는 bluebonnet(미선콩)이 들판을 아주 덮어버린다.

한때 한국 농촌의 빈 땅을 채우던 자운영처럼.

푸름만으로는 그림이 안나온다고 Indian paintbrush가 더러 침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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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중겅중 뛰거나 뒹굴고 싶은데

방울뱀까지 걱정할 것은 없어도 독충이 많으니까

함부로 초원에 들어가기가 그렇다.

불개미나 진드기(chigger)에게 당한 적이 몇 번이던가.

그래도 뛰놀고 싶다.

말 타러 몽고 가는 관광 상품도 이용자가 많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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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말이라는 동물

애들이라도 넘을 만한 펜스, 제 무릎 높이도 안 되는 작대기 하나 걸쳐놨다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 안에 살도록 기억을 내장하여 그런지.

한 번이라도 타넘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방책(防柵)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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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전류까지 흐르는 철조망도 있고

지뢰도 묻어 놓았으니

아무 데나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뭐라더라 상상임신 같은 것처럼

있지도 않은 담을 가상설정하거나

저 혼자서 금 긋고

한계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건

우스운 노릇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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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수련으로 얻은 내공 십성으로 끌어올려

벽이 있다고 여긴 쪽으로 장풍을 쏘았다.

자욱했던 먼지 가라앉고 보니

거기 뚫린 구멍도 없고

아니 무너진 벽 같은 게 도무지 없던 걸.

난 그냥 벌판에 홀로 서있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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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부술 건 없었던 거야.

하긴 뭐 있다고 치고

넘자면 못 넘을 것도 아니고

뚫린 구멍으로 오가게 되어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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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동물.

오면 거기 그립고

가면 여기 생각나는데

환경이야 아무러면 어때

사람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높고 낮은 담장과 좁은 골목길도 나쁘지 않고

말은 “Oh bury me not on the lone prairie.” 그러면서도

거기 그렇게 혼자 있게 되어도 괜찮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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