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의 노래
일처럼 하던 블로깅 이젠 쉴 때 되지 않았는가
안식월이 될지 안식년이 될지
아주 사라지고 잊혀질지
몇 안 되어도 자주 찾아오는 이들에게 인사는 해야겠기에
꾸역꾸역 구질구질로 질질
헛걸음하시지 말라고
이제 그만이니까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불비례...
그럼.
(그 붉은 동그라미가 불쑥 다가와서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하는 경험
나도 싫은데 다른 이는 어떨까... 싶어 '비공개'로 하지는 않겠지만
그냥 찾지 마시라고...)
1
가뭇없게 사라졌기야 하겠느냐
무슨 흔적 남겼을 테니 따라가면 되겠지만
원행(遠行)할 만큼 건강이 좋지 못하니
기력회복하거든 찾아보겠고
그때까지 잘 살기 바란다
“영감, 영감,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에 속는 듯 다 내어주고
그래도 살아 돌아가 한번 보기라도 한다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넘어야 할 고개가 다섯 개더라
그러니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살아서 볼 수는 없는 건가
2
만나기는 했던 건가
가슴 뜀과 마음 졸임이 있었다면
그래서 주름도 생기고 파이기도 했다면
새겨진 게 지워질 수도 있는 건가
무너질 것이라면 왜 무너지지 않는지 오히려 기다리게 되고
그러면서도 사라지지 말라고 세운 것이라서 그냥 거기에 있기를 바라지만
돌로 천 년을 견디면 무엇 하겠느냐
그래서 보물로 인정되었다고 해서
돌이 금값을 넘어서게 되었다고 해서
돌이 사람보다 날 게 무엇이냐
남은 탑이 가버린 사랑보다 더 귀한 건지
(불탄 명찰
그거 중창해야 되는 건가)
3
직녀가 있기는 있는 건가
제 할 일 하면서
날줄 씨줄 엮어 하루씩 곱게 이루면서
기다림은 놓치지 않는
긴 기다림의 강을 건너고 마는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문병란, ‘직녀에게’-
4
그야 견우가 있고서야 직녀도 있을 것이고
성춘향이 아무나 기다리는가
이몽룡을 기다린 것이다
견우라야 견우의 노래를 부를 것이고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서정주, ‘견우의 노래’ (전문)-
그림: 산정(山丁) 서세옥(徐世鈺)
5
마주보며 나아간다면
약수(弱水)에 빠져죽는 들 어떠랴 싶다가
등만 바라보며 뛰어들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러니 뭐 이때껏 있음직도 하지 않은 ‘전설 따라 삼천리’ 읊은 거지만
즐겁지는 않았지만 좋았다고
너무 길었지만 그래서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고
뉘우침의 강물에 고마움 푼다
그림: 산정(山丁) 서세옥(徐世鈺)
6
33,288 날을 날으시고 이젠 날개 젓기를 힘들어하시고
기도할 때 빼놓고는 기운 차리지 못하실 정도지만
970일쯤 전만 해도 어느 날 일기에서 그러셨더라
2003년 9월 1일 월 흐림
오늘 64회째 결혼기념일이다.
혼자된 지 17년이 되었는데 허전하다면 좀 노욕이랄까?
지난 일을 더듬어본다.
신혼여행을 금강산으로 갔다.
내금강여관에 투숙하였는데 천주교신자인 주인이 각별히 마음을 써주어 고마웠다.
9월 3일 기와를 올린 내금강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돌려지는 쟁반에 놓여지는 헌금은 5전, 10전, 스무 명도 안 되게 앉아있었다.
우리는 여비를 절약하기로 하고 10원을 헌금으로 드렸다.
중년이 넘은 전도사님의 설교는 기억되지 않는다.
예배 도중 창밖으로 큰 노루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예배였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 최재형 시인의 <내 인생의 계절>이라는 책을 읽었다.
‘꽃밭에서 노인이’라는 제목의 시 중 몇 줄을 옮겨본다.
꽃은
아무리 외딴 산골에
홀로 피어있어도
외로움을 타지 않고
늘 웃고 있다.
우리는 모이면 싸우고
혼자 살면 외로워 못 견디는데
이 시를 감상하면서
꽃은 누구도 보아주는 이 없고 아무도 칭찬하는 이 없어도
이웃한 꽃과 시샘 시기하지 않고 서로 웃고 사귀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외로워하지 말라. 시샘하지 말라. 마음 상해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지 않느냐?
향기 가득히 담은 네 꽃 피우도록 하라.
몇 줄 아래 에밀리 디킨슨의 시도 옮겨 적으셨다.
내가 한 사람의 심장 찢기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내 인생 헛된 것 아니리
내가 한 사람의 고통 덜어줄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아픔 식힐 수 있다면
기절한 울새를 놓아
둥지로 돌아가게 할 수만 있다면
내 인생 헛된 것 아니리
7
시작이 분명치 않아
이제 와서 기념일이라고 구별할 날을 제정하기가 좀 그렇다만
몇 해 되었는가 손꼽는 재미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