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그치면
그야 비 내려야지
모내기 앞두고 넉넉한 물 모아야겠지만
그게
갈데없는 나는 그렇다 치고
연휴에 날 잡아 나가기로 한 이들 속상하겠다
가는 비에도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꽃들에겐
그 정도라면 좀 심하지 않은가 싶기도
도심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견디는 모습이 안쓰럽다만
작약이 폈더라
또 피겠지 싹 가버리지는 않겠지만
이 비로 먼저 핀 놈들은 후르르 무너지리라
그렇게 작약이 피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몇 자 적는다
못 본 사람들에게 왔다갔음을 증언하는 뜻으로
봄꽃들 사라졌다고 해서
이별을 슬퍼하는 철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헤어짐과 떨어짐에 무슨 정해진 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움은 낮밤 때도 없이 찾아드는데
간밤에 잠 못 이룬 사람들 있겠구나
이름 남기지 못한 여인의 글은 전해진다
向來消息問何如(향래소식문하여) 보내신 소식에 안부 물으셨지요
一夜相思鬢欲華(일야상사빈욕화) 밤새 그리움으로 귀밑터럭 더욱 희어집니다
獨倚雕欄眠不得(독의조란면부득) 홀로 난간에 기대었으나 잠이 올 리 있나요
隔簾疎竹雨聲多(격렴소죽우성다) 발 너머 성긴 대숲에 빗소리만 늘어나네요
요즘 뭐
메마른 세상
눈물 보일 필요도 없고
못 참을 것도 아니지만
괜시리 붉어진 눈 들키지 않으려면
비라도 많이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
가면 가는 거지 했는데
뒤를 보니 안됐고
떠나지 말라고 하고서
제가 먼저 돌아서기도 하고
이 비 그치면
모란이 다 질까
모란 지고 나면
꽃은 다 없어지는가
패랭이꽃 곱지 않던가
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사람들은 모란의 화려함을 좋아해서
栽培滿院中(재배만원중) 집집마다 꽃밭을 채우듯 가꾸지만
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쓸쓸한 들녘 거친 풀들 사이에도
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고운 꽃 무리져 피어있음을 뉘 알아주랴
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그 빛 연못에 뜬 달에 스며들고
香傳隴樹風(향전롱수풍) 그 향기 바람에 날려 언덕과 숲으로 퍼져가나
地僻公子少(지벽공자소) 궁벽한 시골을 찾아올 귀공자 있겠는가
嬌態屬田翁(교태속전옹) 촌 늙은이에게나 네 고운 모습 보일 수밖에
-鄭襲明(정습명), ‘石竹花(석죽화)’-
패랭이꽃 피고
치켜보면 산딸나무
같이 어울릴 자리에는
나리 원추리 도라지꽃도 덩달아 피고
이 비 그치면
... 짙어 오것다
풀빛 짙어지고
물빛 깊어지고
그리움 숨기지 못해
배어나오겠지만
(나 땀 많이 흘려)
그만큼 견딜힘도 늘어날 것이다
(작용 반작용이라 그러지 않던가)
오지 않을 터이고
가기도 그렇다
사는 이유는 아니지만
만나기야 하겠지
목멤을 밀어낼 정도는 아니지만
내 맘 밑바닥에서 따뜻함 조금씩 치올라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