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1
중동과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로 급하게 떠나는 이들 영성 훈련한다고 기도원 찾아갔지만
조교-마뜩찮아 하시는 교관께 맨날 깨지는 조교...-가 노라리라서
그냥 놀멘놀멘으로 지나갔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 뒤에 절뚝거리며 얍복 나루를 떠나는데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다고.
속도를 숭배하는 사회에서 절뚝거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음
그래서 더 잘 됐다고 여김
그러면 얼바탕(영성) 제대로 된 것 아닌가?
그때 그렇게 물으시겠지. “그래 넌 뭘 하다 왔니?”
(머리를 긁적이며) “죄송합니다. 잘 놀다 왔습니다.”
그럼 뭐라 실까? “잘 했어, 다 너 같으면 얼마나 좋겠니...”
작업을 유희처럼 즐기고
꼬박꼬박 챙기지 않아도 잘만 돌아가는.
배울 것 없으니 부실한 내용 기억할 것 없고
거기 왜 있는지도 모를 조교 욕할 것 없고
가면 한참 고생할 텐데
-몇 년 걸리겠지?-
가기 전에 준비할 일이 많아 분주하겠고 무척 고단할 텐데
의미 있고 꼭 필요한 timeout이라 여기고
잠깐이라도 잘 쉬다 가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그럼... 교육 끝!
2
저쪽엔 지금 큰비 내리고 있다.
좀 있다 이곳으로 몰려오겠지.
비야 늘 오는 것인데
사나운 비 몰아닥치는 때를
(위에서 내리는 게 아니고 옆으로 치더라)
물 위에서 맞게 되면 좀 그렇다.
(물 속에 있는 것 같다)
집안에서 내리는 비 내다보면 좋겠지만
피하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당신 품으로 뛰어들겠사오니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그리고 이거 뭐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뛰지 마, 뛰면 앞에 오는 비까지 맞으니까.
기껏해야 젖기밖에 더 하겠냐?
해 나면 마를 것이고.
3
꽃 많다.
그리고 지금은 온통 sweet pea 색깔
그러니 꼴 좋다.
뿐만 아니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냄새
흰 꽃들, 인동 종류, 백당나무, 층층나무, 조팝나무, 고광나무, 쪽동백, 산수국, 불당화
내려다보기로 하면... 미안하다, 다 불러줄 수가 없구나.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혼자라도 좋다고?
안 보일 때 찾아 나서지 않고
멀리 있을 때 부르지 않고
그냥 기다리다가
지나는 길에 들리면 놀다가라고
꿈 없는 밤엔 푹 자서 좋고
꿈에 보지 않았으면 편했으니 좋고
꿈에 만났으면 반가워서 좋고
... ...
(좋을 줄 알았다는 얘기.)
깼을 때 혼자면 안 좋더라.
둘이라면 더 좋겠더라.
꽃 있어도 그대는 있어야겠더라.
4
산이 막히었으면
물길이라도 있을 텐데
배가 없는지
길 내자면 버얼써 뚫었을 건데
네가 보이고 내가 보이는 자리에서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5
그분도 목마르다고 그러셨다.
(성인성녀의 사랑이 그리워서였을 거라.)
네가 축여드리렴.
꿀꺽꿀꺽 들이키시겠다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그만큼
네가 흘리는 분량만이라도.
꼭 같은 얘긴 아니지만...
내 마음 산비탈
기다림의 딸기 한 송이
곱게 피었습니다
익을 대로 다 익어서
단맛 뚝뚝 떨어지는
딸기 한 송이
언젠가 당신이 먼 여행에서 돌아와
갈증의 세월
해갈하고 싶을 때를 위하여
사랑의 딸기
모진 비바람 눈비 속에서도
지지 않고 더욱 붉게
제 살 태우며 빛나고 있습니다
-이재무, ‘딸기 2’-
6
가는 길에 그늘도 있어야
응달 때에 불평하지 말라는 뜻이지
물론 양지가 더 많아야
7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주려는 마음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게나
아무렇게나
“잘 가라”는 말은
아주 가라는 게 아니고
가는 동안만 살펴가라는 게 아니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샬롬
함께 계심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