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무슨 공연이 일곱 시에 끝나는가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시가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타박타박 남산 기슭 걸어 내려온다
집이 있으니까
돌아가면 된다
(그냥 들어가기는 좀 그렇다)
(사슴 모녀 보이기는 하는데 좇아가야 쫓기만 할 것이니 멀리서 보기나 하자)
신록도 괜찮다고 눈 돌리는 이들에게
꽃들은 복수할 길 없어 부르르 떨다가 스러진다
서운할 건 없을 텐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식으로 말하자면
붉음이 푸름을 낳은 셈인데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제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나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나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나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서정주, ‘신록’-
에휴 그게...
얼마나 좋을까로 끝나는
얼마나 좋을까
되지도 않을 거지만
되면 환멸만 쌓이는
반복하는 신 포도는 안 먹어
그래도 간만에 소쩍새, 뻐꾸기, 꾀꼬리 노래 들었다
송화가루로 뿌옇게 된 강물에
애잔한 모습 비치지 않으니 낫다
어떤 장미라도 가시가 있다
그럴 게 아니고
어떤 가시라도 장미가 있다
할 수 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