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1)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어” 정도의 열병은 아니지만
(들뜸과 목마름과 그리움이 합하더라도 열병은 아니니까)
산에 가고픈 바람이 자란다.
(한국의 산들 같아서 가끔 찾던 Smoky Mt.)
혼자 가기는 싫다면
꼭 가야할 것도 아닌가봐.
그럼 보기만 하는 산?
가로막아 넘지도 못할 산
가긴 가야할 산
지금은 말로만 가야지 그러는 산.
산 보네 산 보네 밤낮 산 보네
그대와 나 둘이서 바래 보기면
번갈아 보며 보며 쉬기도 할걸
그대 깊이 잠들고 나 홀로 깨여
산 보네 산 보네 두 몫 산 보네
그대와 나 둘이서 맞추았던 눈
기왕이면 끝까지 버틸 일이지
무엇하러 지긋히 감고 마는가
그대 감은 눈 우에 청청히 솟는 산
산 보네 산 보네 두 몫 산 보네
-서정주, ‘산사꽃’-
그런 산 아니고...
큰맘 먹을 것도 아니고
가면 가는 산
갔다 와서 또 가는 산
그냥 가보겠다는 게 아니고
거기서 살면 좋겠다는 얘기.
언제라도 산에 갈 테니까
그때 가면 알게 되겠지만
가야만 아는 건지?
겨울이라야 겨울을 알 것도 아니니까
일부러 겨울을 만들 것도 아닌데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마종기, ‘겨울 기도’-
여행길에 뭘 들고 다니지 않는데
오사카에서 병을 하나 사들게 되었다.
‘白梅 Shiraume’를 그린 포장이 너무 예뻐 보여서.
꽃, 달, 술, 벗이 연상되었고.
이정보가 그랬거든.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니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하리오
그새 매화, 벚꽃, 도화 다 갔다.
벗은 오지 않았고.
꽃잎 날린 지 오래라서
기억 속의 춘흥이 발기하지 않는데
봄 갔다고 꽃이 사라진 건 아니라서
그때 그 꽃 사태 후에도 지천이라니까.
(다만 초록지붕으로 가려진 것뿐이다.)
그러니 ‘겨울 기도’ 같은 건 못해보겠네?
(아직 꽃, 무성, 열기...)
그래도 배우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산은 뭘 가르칠 것 같은 분위기로 다가온다.
이제는 통속이 되어버린 “청산은 나를 보고”도 있고...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중에서-
가면 만날 것 같은 기대도 있어
산에 간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신동엽, ‘산에 언덕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