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살문
신원(identity)이란 ‘지속’ 때문에 가능하다.
변하지 않는(듯이 보이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알아본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흐름(flux) 속에 있다.
(아니다, 뭐라도 제 나름의 흐름이다.)
나는 나이다.
내가 난 줄 나도 알고
사람들도 그렇게 알아보지만
(그건 내가 빨리 많이 달라지지 않기에 매일 보는 사람들은 차이를 인지하지 못해서인데)
오늘의 내가 어떻게 어제의 나와 같겠는가?
마음에 접히는 주름살의 결과 두께가 다르고
뭘 먹느냐에 따라서 몸도 달라지니까
날마다 찍히는 바코드가 다른 셈인데
사람들은 서로 물품에 붙인 기호처럼 이름을 불러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꽃살문.
그게 다식판이나 떡살로 찍어내듯 하지도 않았고
선반으로 깎지도 않았고
연장이라면 끌 정도를 사용했을 것이다.
아주 꼭 같기야 하겠는가마는
차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비슷하게 만들어냈기 때문에
기하학적 연속성이랄까 정렬된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그저 그런 정도는 넘어섰고
장인으로서의 긍지도 머리 꼭대기까지 찼지만
재주로 돈벌지 못해 잘한다는 소리 들어도 배고프긴 마찬가지인
쟁이(匠人)가 만들어낸 것이다.
재료도 그렇다.
그냥 그런 나무는 아니고 꼭 쓸만한 것으로 골라 잘 준비해야 한다.
(100~300년 된 춘양목 북쪽으로 뻗은 가지를 바람 맞으며 삼 년, 창고에서 일 년 말려...)
(세상에 시시한 것은 없다.
나름대로 독특한 존재이유와 내세울만한 생성과정이 있다니까.
장씨의 셋째아들이라 장삼이라는 이름을 얻은 사람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새해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적어 넣을 게 없는 나날
그렇고 그런 인생인데
특기사항 없다고
오늘이 어제 같을까.
다시 굴러 떨어질 바위를 밀고 올라가는 시지프스쯤으로
비장미를 연출할 것도 없다.
저보다 몇 배나 큰 밥인지 똥인지를 굴려가는 쇠똥구리의 성실.
무늬 하나 조각 하나가 다 귀한 것들이다.
거기에 있어야 할 것들이다.
오래 견딘 것들
그래서 더욱 값나가게 되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그만그만한 날들이지만
오늘은 어제와 또 다르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골치 아프다면서 끝까지 읽은 분들에게 선물 하나쯤 남기기로.
절에서 내려오는 길이라서...
(내 취향은 아니지만)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풍경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