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흥남 철수 때 미군 짚을 얻어 탈 수 있어서 살아났던 그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 겨울 추위는 두 번 겪어보지 못할 거였어.”로 시작했다.

{그랬을 것이다. 방한 장비가 월등한 미군들조차 동상으로 전투능력을 상실할 정도였다니까.}

그렇게 말하기는 해도 그가 살아남았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대견하고 고맙겠어?

이미 그저 그런 포토샵 기술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로 영상 처리했을 터였다.

{몇 번 그러다 보면 원본보관이 안 되는 거지.

경아나 영자가 가출의 불가피성에 관한 진술을 저도 믿어버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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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여름의 끝’에서 ‘그’를 빼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밑줄 글 이유가 없는, 주목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들의 허비라 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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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여름의 끝’을 언급하는 게 어때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 아냐?

“이제는 그만!”이라는 절규 내뱉지 않더라도

진득한 사람이라도 그렇지, 견딜 만한 정도와 시한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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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어느 날에는 108도를 찍었다.

{108 번뇌로 들끓었지.}

지금 오후 6시, 102도, 내일도 100도 넘는다고 그러데.

에어컨 빵빵 켜놓은 실내에서야 아무러면 어떻겠어, 안 나가면 돼.

 

조선 땅보다야 낫지, 거긴 습도까지 높으니까.

그런데도 “햇살이 불처럼 뜨거워/ 눈이 흐리어” (윤곤강, ‘해바라기’) 라는

거기 여름에 있고 싶다.

“여름아 이제 그만 가라” 그러면서 여름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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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생각한다는 건 끝이 다가왔기 때문.

아니 종말의 시작은 생각 이전에 진행되었다.

그렇더라, 시작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고 시작한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더라.

불치의 병, 노화, 치매...

모든 시작은 쇠퇴와 몰락의 시작이고

종말은 시작 안에 내장(內藏)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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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 언제 끝나나” 하다가

“응, 끝? 그러고는?”으로 놀라게 되는데

끝은 다른 시작이니까!

끝은 종식(終熄)이 아니고 성취(成就)이니까.

Metamorphosis로 지양(止揚, aufheben)하는 단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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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지독한 것은 추억이 깊더라고.

정말 힘들었던 불볕과 긴 장마에 대해서도

“지난여름은 위대했습니다” 그러더라니까.

 

꼭지 떨어지지 않고 시든 사랑에 대해서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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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니까 ‘끝’을 바랐을 것이다.

“그만 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좋았는데...”라고 그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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