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골라 다니기

 

지난 가을에 찾았을 때는 바다가 보였다.

그래서 다시 오겠다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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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에도 해가 드러나기 전이었지만 감포 앞바다에 수평선이 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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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가야지” 그랬는데 내일은 없다.

(내일로 가면 내일이 아니니까.  올날來日은 오늘로 되고 마니까.)


밤새 비 오더니 개인 건 아니지만 먼 산이 드러날 정도.

비 멎은 틈을 타서 뻐꾸기가 운다.

울음이 왜 그리 바쁠까?

그동안 노래하지 못해선지, 아니면 곧 다시 비올 게 뻔해서 서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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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게으른 안개가 산자락을 감싸기 시작했다.

게으르다고?  혁명군처럼 신속하게 요소를 점령한다.

고개 넘어오는 차들도 보이지 않고

차 한 모금 마시고나자 저 안개 뒤에 뭐가 있으려니 암시할 만한 실루엣만 비추고

(근경의 나무와 떨어져 있는 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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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문을 여는 사이에 잿빛 스크린이 쳐진다.

 

지척이 천리라더니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몇 자 적어 보내려는데

젖은 습자지라 이내 번져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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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내가 담길 만큼 접근하면

그대 입가에 미소가 걸림을 볼 수 있었다.


마음에 담아두겠다는 뜻도 아니고

괜찮은 사람 같아서 서늘한 눈빛 한번 보낸 것인데

단순한 호감 표시를 오해한 대가가 너무 컸다.


그대 마음을 훔치지 못했으니까

나만 빼앗겼던 셈이다.

억울해서는 아닌데


    모질게

    욕이나 할까부다


    네까짓 거 네까짓 거

    얕보며 빈정대어 볼까부다


    미치겠는 그리움에

    독(毒)을 바르고


    칼날 같은 악담이나

    퍼부어 볼까부다.


     -신달자, ‘그리울 때는’-



개일 것 같아 내디딘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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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도 아닌데 가로로 쳐들어와

몸에 척척 달라붙는 는개

그 뻔뻔한 공략에 당한 듯싶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늘 그렇게 조금씩 내어주다가

푹 젖곤 했다.)


가랑이 척척해질 정도로는 형벌이 경미하다 여겼는지

주룩주룩 모드로 전환한다.

이 무슨 억울한 가중처벌인가.


그깟 빗방울 무게 견디지 못해

오동꽃 떨어지다가

내 어깨에도 하나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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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걸음이라 감포, 구룡포 거쳐 토함산까지 갔다.


어떤 갠 날 오후에는 이런 그림도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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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은 해떨어지기 전 잠간 하늘이 곱게 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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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만 있는 게 아니니까...


검푸른 파도 위에 비가 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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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가는 것이냐

갔다 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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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도 맞으면 아프다.

그래도 거기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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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서로 기댄다는 것

혹은 그래도 거리를 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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