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만난 꽃들
는개(煙雨)로 시작해서 이슬비(絲雨)로
다시 가랑비(細雨)로
그렇다고 나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큰맘 먹고 나들이하자면 꼭 비가 오지만
(“님이 오시나보다”도 아닌데...)
모내기철이니 단비(甘雨), 고마운 비(慈雨)라 여기자.
(그래도 보리 거두기 전에 오래 오면 안 돼지.)
주말에 석굴암 들릴 사람들 많을 것 같은데
비 오는 날 저물 때쯤 되니 토함산 오르는 길에 인적이 없다.
쥴리엣 방에 살그래 드나들듯
젖은 숲으로 들어서니
한물진 흰 꽃들-이맘때 나무에 달려 피는 것들은 대개 희다-
조롱조롱 달렸거나 조붓이 모였다가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대~한민국”과 함께 엇박자 박수 같은.)
그야 이런 날 찾아와서 지기 전에 보아주니까
고맙기도 할 것이다.
높은 데 달린 건 어루만질 수도 없으니
그냥 이름만 불러줄게.
찔레, 때죽나무, 층층나무, 국수나무, 가막살나무-에구, 꽃말도..., 아카시아, 칠엽수
(너 여기 있는 줄 알면 누가 패가겠다, 후피향나무)...
미안하다 허리 굽힐 수가 없어
발치에서 떠는 사시랑이들에게 뭐라 위로해주지 못하고 간다.
그리움의 사슬이 한 뼘 더 늘어나긴 했지만
가만가만 종일 내린 은죽(銀竹)으로
적잖은 위로도 있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