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비는 이리도
소나기 쏟아질 때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라는 얘기
나도 봤으니까
그런 줄 알고 미심쩍은 눈초리 치우라고
(올라가고 싶고
돌아가고 싶고
뛰어야 벼룩이라지만
빗방울 사이사이 건너뛰어
어떻게 하늘에 닿을 수 없을까
힘 모자라지만 여울을 거슬러
처음 솟던 그 샘에 가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당에 떨어져 수탉이 냉큼 삼키는 것으로 끝났지만)
어디로 도망치자는 것도 아니지만
알리지 않고 떠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여름 괜찮지 않은 여름 큰비로 시작하는 여름에
가면 어딜 가겠느냐 면서도
나오긴 했다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나희덕, ‘기억의 자리’-
기운차게 내리는 비
어제를 지울 수 있을까
오늘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검은 구름 다가오는 것 보며 내디딘 걸음
잠시 피하면 지나갈 줄 알고 나간 거니까
가자면 가는 거고
쉬자면 쉬는 거고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곽재구, ‘소나기’-
비 그치면
시치미 떼듯 흰 구름 떠돌 것이다
한 방울 따로 구를 때는
아주 귀해 보일 것이다
연못에 떠오르는
연꽃 하나.
연꽃 잎에 구르는
이슬 하나.
이슬 위를 스치는
바람 하나.
거울에 떠오르는
얼굴 하나.
그 뺨 위로 구르는
눈물 하나.
눈물 위를 스치는
한숨 하나.
어이할꺼나
빈 사립 해어름 꽃잎 지는데
빈 가슴 목마름 금이 가는데
바람인 듯, 한숨인 듯, 꽃향기인 듯,
동구 밖 사라지는
옷자락 한끝.
여름 하늘 스러지는
흰구름 한끝.
-오세영, ‘흰구름’-
가자면 가는 거지만
또 그렇게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