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1)
어렸을 적에 그랬던 사람들도 있지만
해보진 않았어도 그런 얘기 들은 사람들이 많아서
“감꽃목걸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다.
아파트 정원목이나 가로수로 많이들 심었으니까
서울사람이라도 지난 두 주일쯤 떨어진 감꽃 밟고 지나갔으리라.
감꽃? 아니고 꽃받침일 것이다.
지나치며 감꽃 보기가 쉽지 않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무성한 잎들 사이에
(잎이 더 빼어나기도 해서 꽃은 숨고 싶을 것이다.)
큰 꽃받침으로 가려진 데다가
색깔도 붉지도 않고 노릿한 보호색이라서
서서 들여다보아야만 보인다.
김준태, 에이 사람도...
삐딱 심뽀를 과하게 쏟아내긴 하지만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지 몰라.
(‘감꽃’ , 수록된 시집 이름은 <통일을 꿈꾸는 슬픈 色酒歌>, 아휴~)
지자고 피는 건 아니지만 어쩌겠나
핀 건 지고
꽃 진 자리에 열매 맺히고
이듬해 또 꽃 달 테니까
진다고 마냥 슬퍼할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렇게 떨어진 것들 밟고 지나가자니 마음 편치 않구나.
아파서 좋은 건 아니지만
아파도 좋다고 할 것도 아니지만
선택한 아픔인 걸 어쩌랴.
제가 품기로 했더라도 괴로운 건 어쩔 수 없어서
괜한 원망 생기는 것도 또한 어쩔 수 없더라.
다 들을 것도 없지
사랑 앓기의 통증 호소는 다 그런 것 아닌가?
혈액 검사, 내시경 검사, 단층 촬영, 자기공명 영상 다 들여다보고는
이상 없다는데
그러니 ‘신경성’이라는데
괜히 망신당하고 분한 생각 들지 말고
저리지만
아리지만
찌르지만
그리고 날카롭지는 않아도 늘 있는 더부룩하고 메슥메슥하고 무지근한 것들, 어지럼증
이름대지 못할 아픔들 밝힐 것 없고
삼키고서는 쏟아낼 수 없으니까
그냥 담고 사는 것이다.
꼭 한번
(말은 그렇게 하고 “꼭 한번”을 반복하는 수도 있지만)
모진 비바람 분 것도 아니라서
부르르 떤 적도 없는데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 내기도 한다.
그런 반역
다 지워버리겠다는 듯한 위협의 몸짓
그렇게 하혈이 좀 있었더라도
낙태(落胎)까지 이른 건 아니다.
아기감들 더러 떨어졌다.
다 건질 수는 없다.
꽃핀 개수만큼 열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달린 열매 다 익는 것도 아니고
익었다고 다 딸 것도 아니고
딴 것 다 팔리지 않던데
그렇게 거쳐 온 것들 어느 집 냉장고 구석에 쳐박혔다가
문드러졌다고 말랐다고 맛이 갔다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도 하니까
솎아내기의 기준을 두고 말하자면 윤리적 문제가 생기지만
[해거리하는 수종은 심하게 전지(剪枝)하거나
가지 자를 시기 놓쳤으면 꽃을 훑어 떨어트리기도 한다.]
자연도태에 대해서는 좀더 대범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진다는 건 꽃의 기억을 지우겠다는 게 아니고
품고 키우겠다는 뜻이다.
상실은 슬퍼할 빌미이기도 하지만
소망의 이유이기도 하다.
감꽃은 떨어지고서야 피었던 줄 알게 되더라.
그래도 감은 열린다.
감 달렸으면 꽃 피었던 적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