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3)
평양 방문 중에 학생소년궁전에서 아코디언 합주단과 합창단의 연주로 들은 노래 가사.
민들레 곱게 피는 고향의 언덕에
하얀 연을 띄우며 뛰놀던 그 시절
아~ 철없이 바라본 푸른 저 하늘이
내 조국의 자랑인 줄 어이 몰랐던가
(‘내 나라의 푸른 하늘’ 1절)
이 세상 그 어디나 하늘은 있어도
너보다 푸른 하늘 어디가 찾으랴
(‘아 푸른 하늘’ 첫 부분)
북의 가요들이 대개 그렇듯이 위의 노래도 곡조나 가사가 조국애를 고취하고 있지만
특별히 적대적인 정치성을 띄지는 않은 것이라서 그런 노래들을 남북에서 같이 부를 수 있다면
긴장완화와 동질성 확인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배고프고 자랑할 게 많지 않던 시절에 한국은 ‘가을 하늘’을 많이 내세웠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그런 하늘은 없다고. (어디를 가 봤다고...)
하늘은 어디서라도 좋더라.
평양, 만수대, 남포, 묘향산에서도
서울(비갠 후만), 지리산, 강릉, 서산에서도
다른 나라 다녀 봐도 다 좋더라.
이동 중에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기에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장면들을 담지 못했다.
염소 떼를 돌보는 아이가 “멱 감을 동안 사고치지 말고 거기들 있어” 하고선 웅덩이로 뛰어드네,
도무지 고기가 있어 보일 것 같지 않은 수로에서 반두질하는 노인,
하지라 노을로 물들긴 이른 시각인데 농로로 소달구지 몰고 가는 소동(小童),
대동강 하구와 남포 가는 길에 펼쳐지는 개펄은
순천만의 낙조만큼이나 사진작가들이 모습을 담고 싶어 할 텐데.
주체탑 근처에서 건너본 평양
순안공항 상공
때가 때인 만큼 벌판이 온통 푸르다.
(전쟁과 궁핍을 겪지 않았던 땅 같다.)
아, 곧 장마 시작될 텐데 저 보리는 언제 벨 건가?
옥수수야 더 빨리 자라라, 알이 들어 여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되겠니?
나무, 포플러와 아카시아가 대부분이니 좋은 나무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곳에 따라 오래 된 소나무들도 있고 밤꽃이 한창이다.
끝물 함박꽃이 시들어가고 있고, 남쪽에서라면 흔할 칡넝쿨이 보이지 않았다.
예쁜 들꽃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마타리, 그리고 어디 가면 없을까 개망초.
(이건 비밀인데... 왜 그걸 못 찾아내서 내 차지가 되었을까, 갯메꽃이 있구나.)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접시꽃들이 영접위원처럼 서 있다.
만경대에서 바라본 평양
아, 구름 이야기하려다가...
내가 저 구름 따라왔나, 아님 북한산에서 자주 만났던 구름이 날 좇아왔나
묘향산에서 또 마주치는구나.
이렇게 다시 보기는 한다만
구름과 연애하는 건 구름 잡기, 말짱 헛일
수없이 헤어지고
{그야 뭐 회자정리(會者定離)라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남는 게 없다.
그것도 그러려니 하는 거야.
어디선가 옛적 그는 아니지만 많이 닮은 이를 발견하곤
조금 놀래는 시늉하다가 고개 흔들고 가는 길 가는 거지.
이하 묘향산 넘어가는 구름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구름은 구름이지만
그 구름이 저 구름은 아니다.
그래도 구름을 볼 때마다 작은 탄성이 새어나온다.
풀빛, 물빛, 하늘빛은 어디라고 다르겠는가
아니 다른가?
저기 저 하늘 저 산 이제 멀리서 보며
가슴에 침전물로 가라앉은 향수(鄕愁)가 다시 뽀얗도록 솟구친다.
향산호텔 앞 개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