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자 1
다니다가 옷자락에 붙은 도깨비바늘 같은 것
돌아와서 떼어내면 그만이지만
그냥 털어버리기에는 좀 그렇다.
별것 아닌데 ‘어떤 여자’라는 제목으로 시선 끌게 하려는 심보가 불량하다.
이응 받침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ㄴ’으로 들리고
가당찮게도 경상도 억양이 녹아들은 말투이지만
한국어를 곧잘 하는 여자가 통역 겸 시중드는 뜻으로 따라붙었다.
그녀가 어려워하는 사장님이 곁에 없을 때는 끊임없이 조잘댔다.
-내 이름은 해돋이라는 뜻의 우림포야예요. 그냥 우레라고 부르면 돼요.-
(실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왔다.
그녀가 한국에 다시 들어올 때는 다른 이름을 사용하겠지만, 그래도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한국이름은 혜련이에요. 김혜련. 처음 간 공장 김사장님의 옛날 애인 이름이 혜련이었대요.-
(여기서 대꾸하고 싶어졌다.)
-사장이 우레를 좋아했던 모양이구나?-
-지금은 살 많이 쪘지만, 나 얼마 전까진 날씬했다고요. 그리고 다들 나 좋아해요.-
(그래, 붙임성이 좋으니까...)
-사모님(작업 감독)도 날 좋아했는데, 나중엔 좀 의심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런 관계가 아니었는데... 남자 여자라고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이하 혼자 주절거린 얘기)
-내 딸 이름도 혜련이에요. 학교에 첨 가는 날 애들이 한국이름을 가져야 된다면서
혜련이라고 하자고 그랬대요. ‘엄마 이름이 혜련인데 같은 이름이면 되냐?’고 하니까
‘엄마가 바꿔, 난 혜련이 좋아.’ 그래요. ‘야, 나는 다른 사람들이 혜련이라고 부른지 오래 됐으니까
네가 딴 이름을 가져야 돼.’ 그래도 고집부리길래 할 수 없이 큰 혜련이, 작은 혜련이로 통하며 살았어요.-
-나도 대학에서 회계사 되는 공부했어요. (그건 좀... 그냥 “그래...”라고 대꾸해줬다.)
한국에서 미싱사로 일했는데 처음엔 60만원 받았고, 나중에는 일 잘 한다고 140만원까지 받았어요.
돈 모으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술 많이 마셨냐고 사람들이 묻지만, 딸애 과외공부에 워낙 많이 들었거든요.
여기서는 50만원밖에 벌지 못하니까 딸에게 보내줄 돈이 없어요.
우리 혜련이 영어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쳐요.-
그녀는 한국에서 사기 당한 얘기, 저를 질투하는 사장 동거녀에게 된통 당한 얘기,
불법체류로 걸려 딸과 작별인사 나누지도 못하고 돌아온 얘기,
그 딸은 절대로 고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그런다는 얘기,
위조여권으로 다시 가려다가 선교사-사칭일 것이다-라는 여자에게 오천 불 뜯긴 얘기,
그 여자가 이용하는 어린 남자 애인을 설득해서 마침내 여자를 잡은 얘기...
끝도 없이 풀어댔다.
아이락이라고 하던가 말젖을 발효하여 만든 술/음료/식량쯤 되는 것을 많이 마시자 더 풀어지게 되었다.
혜련이 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에 혜련이(지금 열네 살) 낳고 딸이 세 살 될 때에 이혼했어요.
알아요, 뭐라고 그럴지. 왜 재혼하지 않냐고 물을 거지요? 남자들을 미워하거든요.
몽골 남자들은 일 안 하고 빈둥거려. 한국 남자들은 날 짝으로 상대하지는 않고.-
딸이 보고 싶다고 그런다. 지금도 사천 불만 있으면 위조여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방법이 없으면서 뭐라고 위로해줄 수도 없어서 그냥 듣기만 했다.
우레는 노래방 용 한국 노래를 잘 알지만 내가 모르고 몽골 노래도 아는 게 없어서
“흘러가는 볼가 강물”, “백만 송이 장미” 같은 러시아 노래들을 같이 불렀다.
러시아 문자로 아주 슬픈 노래라며 몽골 노래 가사를 적어주었으나-다음에 만나면 같이 부르자고-
읽지 못하겠네, 어디 다시 보기나 하겠니...
평원에는 어둠이 잦아들고 있었다.
-오뜨게레시(경작지 관리인)를 위해서 많이 많이 기도해주셔야 돼요.-
-어,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나도 한국 있을 땐 교회 가봤다고요. 일이 많아 일요일이라고 쉴 때가 별로 없었지만.
오뜨게레시는 마누라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어린애가 둘인데...
그런데, 뭐 과자 같은 거 없어요?-
아, 인천공항 VIP 대기실-은행에서 우대권 하나 얻었다-에서 눈총 받으며 쓸어 모았던 과자가 있지.
녹아서 눅진눅진한 것이지만 요긴하게 썼다.
씩씩한 우레는 “저~ 사장님. 아이 미안해요, 사장님이 입에 붙어서. 선생님, 그럼...” 하다가
잇지를 못하고 그렁그렁한 눈을 돌린다. 옆에 서 있는 한국인-그녀의 고용주-을 의식하며
“어디 악수나 한번 하자” 하면서 손을 잡자 솜씨껏 챙겨 넣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남아 이주 노동자가 75만 명 정도-그중 몽골인은 2만 5천으로 추정-된다.
합법 체류의 신분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많다. 이산가족의 슬픔도 안고.
(타자연습도 아니고 웬 시시한 얘기가 이리 길어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