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모경(暮景)
‘~ㄹ다’로 끝나는 동사의 명사형은 ‘ㅁ’을 첨가하여
아물다>아묾, 영글다>영긂, 머물다>머묾, 살다>삶처럼 되는데
읽자면 ‘ㄹ’의 음가는 탈락해서 ‘아뭄’, ‘영금’으로 들리게 되지만
나는 무슨 재주를 써서라도 ‘ㄹ’과 ‘ㅁ’을 다 발음하고 싶더라.
저묾. 저물ㅁ? 저무ㄹㅁ?
그러면, 저물었지만 머문다, (해 떨어졌어도 빛이 아주 간 건 아니다, 어스름으로 남다)
그래서 적이나 안도되고
그러면서도 한번쯤 부르르 떨게 되더라고.
석모(夕暮)라는 말 없어 (억지로 만들어 못 쓸 것도 아니지만)
(유영모 선생은 호를 ‘多夕’이라 했는데...)
일모(日暮)라고 하니 별로...네.
서향집은 늘 저무는 해만 보기에 가세가 기울고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그러더라만
한여름 오후의 뜨거움이 오래 남는 건 싫어도
석양, 황혼, 모경(暮景), 만경(晩景), 해거름, 땅거미, 저녁안개(夕霧) 난 날마다 봐도 좋더라.
(내가 피지는 못했다, 그건 사실이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그런 때 조오치.
{불 켜기 전, 그래도 멀리서는 잘 안 보일 만큼 어둑할 때는
몸 씻기 적당한 때.}
김관호, ‘석모’(1916)
모정(慕情)
저물녘(暮)엔 그리움(慕) 생기지 않던가?
노을처럼 오더라.
사랑은 지루하게 더디고
구불구불한 날들의 끝처럼
텅 마른 그대 날 저물 듯이 오리라
그대, 구름 같은 그대
하늘 푸른 거울에 낯붉히며 비치는 구름이여
저녁노을, 낮은 한숨으로 피었다
지는 그대
-정남식, ‘저녁노을, 낮은 한숨으로 지는 그대’-
다 되지 않은 작품 서둘러 마무리하듯
다 된 용에 눈동자 그려 넣을 때쯤 되어
암만 해도 잘 안 될 거면 차라리 찢어발길까 고민하던 차에
그럴 즈음 “그만 해도 썩 훌륭한 걸요”라는 격려 듣고 싶고
우쭐해서 “거기 좀 더 계셔요,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게 되는.
(“볼 거 다 봤다, 네게서 나올 만한 건 다 나왔고.” 그러기 없기.)
그렇지만...
늙마(暮境)에 마음을 쏟아 부어 그리워하는(傾慕) 게 꼴이 좀 그렇긴 하다.
또 한번 “그렇지만”인데,
없음으로 있음이 확인되는 게 사랑이니까
그게 아주 위험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흉이랄 것도 아니라는 얘기.
되는 게 아닌데
아닌 줄 알면서 끌고온 엄청난 낭비에 대해서는 할 말 없지만
그건 안 되고 대신 노래 몇 개 건진
아주 밑진 장사는 아니었다는 얘기.
홍수 휩쓸 듯 전쟁 지나간 듯 처참한 폐허에서
뼈아픈 후회를 몇 차례나 했는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현재의 환희는 노래가 되지 않고
이젠 없는 것 황폐한 흔적 때문에
있기나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나 되어
절창이 나오더라니까.
그게 “이름 한번 불러보자/ 아아 박재삼!”처럼
고인은 말이 없으니까 맘 놓고 목 놓아 소리 질러도 되지만
낮은 소리로, 그러나 들으라고 부르고서는
듣고 고개 돌리면
더할 얘기 준비하지 않았기에
부르지 않았던 것처럼 외면하게 되더라고.
“아아뇨, 저는 부르지 않았는데요.” 하고서
좀 있다가 간헐적 신음처럼 되뇌게 되더라고.
바람이 풍경을 쓰다듬는지
풍경이 바람을 껴안는 건지
매여 있는 것과 지나가는 것이
그냥 어쩔 줄 모르다가
깜깜해지더라니까.
글썽이는 것 반짝이는 것 흔들리는 것 깜박이는 것 여린 것들이
가물가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