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
0
가짜에는 가짜 없고 진짜에는 가짜가 따라 붙는다.
가짜를 모조할 건 아니니까.
진짜의 가치라는 위력을 속임수로 행사해보려는 것이 위조이다.
{이단이 많을수록 이단이 표방하는 신조, 교회야말로 진짜가 아니겠냐는,
그러니까 “기독교야말로...”로 나오는 얘기도 있는 줄 안다.
호수 같으니까... 호수에는 여러 물이 흘러들어오니까.}
1
원고지 매수로 값을 쳐준다면
소설가라면 또 모르지만 시인들은 모조리 굶어죽게?
(설사병 환자처럼, 아니 그렇게 말할 게 아니고 레그혼 암탉이 알 낳듯 누에가 실 뽑듯
시라도 술술 잘 뽑는 다작 시인은 사정이 다를 것이나.)
호(22.7x15.8cm) 당 얼마라 그거 웃기는 얘기 아냐?
코끼리를 크게 그리면...
아무리 근수로 치더라도 등급이나 분할 부위에 따라 같은 값으로 치지는 않는다.
(안심, 꽃등심, 차돌백이, 아롱사태, 홍두깨, 제비추리, 도가니, 그것... 이상 무순)
참치라면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만 유기체(organic body)는 부분의 총합보다는 더 큰 것이니까.
분할한 것들의 총체가 원형을 이루지는 않으니까.
그림에 무슨 영양가 없는 부분이 따로 있을까
여백도 그림이다.
2
이중섭, 박수근 그림이 가장 비싼 만큼 위작도 가장 많이 나와 돌아다닌다고?
그렇겠네...
친구 병문안 와야겠는데 과일 살 돈이 없어서 천도복숭아를 그려왔다는 얘기...
PX에서 미군들 초상화 그리던 간판쟁이
그가 아직 살아있던 60년대 초반에도 그의 그림을 3,000원 정도에 살 수 있었다고.
‘달과 6 펜스’ 같은 얘기처럼
박완서는 ‘나목’을 들고 나와서 착실하게 시작했네그려.
3
Andrew Lloyd Weber가 자선기금을 마련하겠다고 그의 소장품인 피카소가 그린 초상화
-그런 거 잊어버려도 되지만 Angel Fernandez de Soto라는 한때 친구의-를 경매에
내놓겠다고. 3,300만 파운드(580억원쯤 되나)가 넘을 거라는.
에휴, 에휴다.
4
지난봄 방북 시 방을 같이 쓰는 사람이 열쇠를 가지고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두 시간쯤 방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볼이 나온 나에게 그가 미안하다며 하는 말...
“김기만-운보 김기창의 제씨, 작고한 공훈화가-의 그림을 흥정하는데 한 시간 싱갱이질에
한 푼도 안 깎아줍디다.” (으그, 남대문시장도 아니고...)
“그래도 통일되면 몇 곱 장사 되지 않겠습니까?” (그으래...)
선주후면이라나 냉면 먹기 전에 술부터 들이키는 안내원에게 그림값 얘기를 했다.
-오만 유로나 하는 그림도 있네?-
“공화국 매점에서 파는 걸로는 그렇게 비싼 그림 없습니다. 잘못 보셨겠죠.”
-아니 당장 옆방에 가봐, 50유로 짜리, 50,000유로 짜리 나란히 걸렸는데...
형광등 그림자 등 비치어 그림 엿보기는 그렇고 가격표나...
5
고흐 생전에 그의 그림은 꼭 한 점 팔렸다.
모딜리아니는 신병치료차 이태리로 여행하면서 여행비, 치료비라도 마련해볼까 했는데
여러 점 팔아왔지만 워낙 싼값이어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의류 과월 상품을 팔 때에 하는 말: “원단 값도 안 나오지만...”
전시회... 황당한 그림값에 입 벌리게 되지만
(다 팔릴 것도 아니고...) 대관료, 광고비 등 비용 제하고 나면 에휴~
물감 값도...
어느 파리 날리는 전시장에 들렸다가 싱거운 사람이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운 적이 있다. 에이 괜한 짓을...
6
파지 더미를 오름 만큼 쌓고 애월 앞바다를 먹물로 물들였다고
‘부작란(不作蘭)도’ 하나 흉내내겠냐만
(하긴 그도 “내가 그리려고 해서 생긴 건 아닌데...” 그랬지)...
그렇다고 무슨 화가 친구가 있어 ‘내부 사정’을 주워들은 것도 아닌데...
뭣도 모르면서 입 달렸다고 떠들고 나니 좀 그렇다.
“신 포도는 안 먹어”라는 얘기지.
그림 하나 걸지 못할 형편이라서...
뭐 지나간 달력에서 오린 것, 복사한 ‘이발소 그림’ 같은 것
여기저기 붙여 놨다.
월북 화가 이쾌대, '봄처녀', 1940
7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서 한다는 말이
“어쩌면... 꼭 그림 같네...”
실물의 이상형이 그림일까?
모사(模寫)의 모사라고 얕잡아본 사람도 있었지.
모르겠다.
자운영 천지에 벌러덩 누워 솜사탕 같은 구름을 바라보다가
어라 잠들었던가... 서늘한 기운에 깨보니 밥 때 놓쳤구나.
달 떴네.
커피나 한 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