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참 지독하다 너
이렇게 끌지 않아도 되는 거야
부을 만큼 부었잖아
이게 뭐야
적실 만큼
흐를 만큼
마르지 않을 만큼
그럼 됐잖아
너는 터진 김에 다 쏟으려고 그랬을 거야
넘침 때문에 빼앗긴 이들도 생각해줘
무너짐 때문에 사라진 것들 어떡할 거야
{그래도 젖을 수 있다는 게 좋은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울 수 있음의 따뜻했음”(허수경, ‘울고 있는 가수’).
나 아직 노래방이라는 델 못 가봤거든
누가 나 좀 데려가줘 한번만.}
왜 그 영감태기((구상, 공초...)들이 죽치고 앉아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그러고들 했지?
그렇게 마주앉은 똘망똘망이 묻는다면 말이지
-저, 선생님, 설움과 서러움은 어떻게 다르지요?
-험험, 설움은 고체이고 서러움은 기화(氣化)된 거야.
-알겠... 고맙... (꾸벅)
(임마, 나도 모르는 얘기를 했는데 네가 뭘 알아? 그거 같은 거야.)
-그럼 한 가지 더. 그리움은요?
-그건 흐르는 거야. 흘러가도 다시 채워지니까 마를 날이 없지.
아 그만 내려라
흐르지 않아도 된다.
이제 마르고 싶다.
나팔꽃
너 참 지독한 놈이야
기댈 데 없는데
감을 놈보다 더 자랐는데
넘실거리다가
비틀거리다가
하늘 향해 더 뻗겠다니
뭘 어쩌겠다는 건지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송수권, ‘나팔꽃’-
그게 말이지 기는 놈은
아니지 기어오르는 놈은
끝까지 기어오르더라고.
앞으로 갈 수 없는 길은
기어오르는 것인가
벽이면 담이면 달라붙어
드디어는 넘어서는 것인가
(... ...)
그리하여 벽은 더 큰 사랑이 되고
더 큰 절망이 되고
절망은 뿌리박고 살며
뿌리박고 넘어서는 일임을 알았다
(윤재철, ‘담쟁이’ 부분)
고3.
그만 주무시겠다면서 그러셨다.
“할 거 많니, 아직 멀었어?”
새벽기도 시간 대어 일어나시면서 그러셨다.
“꼬박 샜나봐? 그만하면 됐다. 눈 좀 붙여야지.”
사랑의 지독함을 어이없어 하다가
경악과 감탄을 거듭하다가
긴 한숨 나직이 토해내며
“그만 하면 됐다”라고
누가 그러겠니?
제가 못 이기겠거든
눈 좀 붙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