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메모 1
1
삶, 그리고 삶이 포함하는 모든 좋은 것, 사랑, 관계, 소유 그런 것들
잃을 수 있지, 언젠가 잃게 되는데
두려워하면 빨리 잃더라고.
있는 동안, 하는 동안, 가진 동안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겸손하게 인정할 것.
용감하게, 감사하며 즐길 것.
{상실과 종말을 대비할 건 없다.}
2
있는 것은 ‘어떻게’ 있는 거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 할 수는 없는데
그 ‘아무 것’이 굉장한 것, 값나가는 것을 가리킨다면
아무래도 다 그렇지는 않아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꽤 있겠는데
의미 있는 것들이라 한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수효는 엄청 줄어들겠고
그 의미라는 것은 접촉과 관계로 발생할 터이니
너는 내게, 나는 네게, 자주 보이지 않게 된 그도
아무 것도 아니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상한 복숭아가 향내는 더 나더라.
아주 문드러진 살 도려내고
{그게 ‘정도껏’이래야지 가차 없이 베어내다 보면 남는 게 없으니까...}
그만하면 괜찮아 보여 남긴 것
아 그건 정말 달더라.
그런 관점에서 노년의 아름다움(?)을 봐줬으면 좋겠어.
고장 난 부분 빼놓고는 팔팔한 애들보다 못할 게 없다고.
4
그 더러운 잔뇨감(殘尿感) 말이지, 해도 안 한 것 같은 느낌
잘 산 것 같지 않아 한 번 더 살아봤으면 하다가도
그래도 그저 그럴 것 같아
그냥 잘 마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