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면서
어디가 집인지 살던 데에서 살았던 곳으로 돌아오고 며칠 지났고
몇 밤 자고 나면 그렇게 머물 곳으로 또 갈 것이다.
(고양이도 아니고... 장소에 애착이 있는 건 아니니까.)
(신장개업도 아닌데
다시 연다고 말하기도 쑥스럽지만
뭐라 해야 될 것 같아서...)
조선블로그.
많이들 떠났고 몇 번 찾아갔던 방들도 더러 허물어졌다.
('관계'에 이르지 않은, 그냥 구경거리였다면 그리 애석할 것도 없지.)
나는... 살아남은 게 죄송하고 돌아오는 게 부끄러워
감시카메라에 얼굴 찍히지 않으려고 삿갓 눌러쓰고 온다만...
뭐 내가 죄를 진 건 아니잖아?
폐쇄한다고 그랬고
그러고 한 주일이 지나면 모든 자료가 자동파기 된다고 그러더라만
그렇게 공중분해 되기 몇 시간 전에
누군가의 격려에 힘입어 보따리를 일단 건져보기로 했다.
그러고는 힘겨워 열지 않고 방치해두었다.
한참 지나 흉물스러운 것을 내버려둘 수 없으면 그때 던져버리기로
혹 살비듬처럼 떨어져나간 것들조차 무슨 골동품 같은 생각이 들거든 그때 챙기기로 하고.
그렇게 한 달이 갔고
금단현상도 극복할 때쯤 되어
금연 금주 선언을 뒤엎을 만한 핑계라도 발견한 듯이
나는 좀 뻔뻔한 얼굴로 방기한 허섭스레기들을 다시 들추기로 하였다.
그것은 할머니의 보따리 같은 것이다.
실패, 골무, 털실 나부랭이, 천 쪼가리, 양면괘지, 리승만 초상의 우표가 붙은 편지들,
장판 색이 된 사진, 증손녀가 어렸을 적에 접어 드린 종이학...
하나같이 바래고 대기만 해도 귀퉁이가 바스러질 것들이다.
결코 시시하지 않은, 버릴 것이 아닌.
(임자에겐 말이지.)
아니다, 이미 버린 것이다.
구겨 던진 습자지를 다시 건져 피는 손을 무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더러 노래가 들렸고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모드 진입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라는 국면전환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공항 나간다고 영종도 들어섰더니 코스모스가 인사하더구나.
그 흔들림에 덩달아 흔들렸다.
그 웃음에 조금 풀어지게 되었다.
열지 뭐.
(노출, 관음, 피학... 그런 죄목 갖다 댈 것 없고
그냥 툇마루에서 "즐거웠던 옛날의 노래를 다시 한번 들려주오"를 흥얼거리는 할아범이 되기로.)
아직 기다리는 것일까
무슨 단서 같은 것이라도 있어
기다림의 줄을 놓지 않는 것일까
길목을 지키는 것일까?
아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별 거 아닌데, 정말 아닌데, 아 아니라는데.)
봄, 여름이라 할까
겨울 봄 여름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지난 가을부터 잡을지
(어려운 시절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어려움은 자리잡게 되니까.)
참... 그랬다.
'그랬다'는 건 '슬펐다' 할 수도 없고
변방으로 밀려서도 아니고
애씀의 덧없음?
그런 건 십대에 터득했으니 새로이 문제가 될 것도 아니고
갑자기 다가온 행운 같은 것이 아무 영양가 없는 일회성 스침으로 지나 가버려서도 아닌데
무슨 상실감 같은 게 분명히 있었다는 얘기다.
(아휴 이런 상투어가 튀어나와 미안한데... 다 생각 나름이거든.)
버렸다는 것은 주운 적이 있다는 뜻.
그렇게 선택되었던 것에 감사할 것.
잠시 그대를 쥐었던 손의 체온을 느낀 적이 있음을 즐거운 추억으로 여길 것.
(돌은 돌끼리 있을 때가 괜찮았는데
괜히 계집아이 손에 간택되었다고 재기도 했지... 씁쓸.
공기돌...)
그리고 버림받음은 놓여남이기도 하거든.
계약 해지.
그러니 조락(凋落), 상실, 나쁘기만 한 게 아니고
체념(諦念)이란 '도리를 깨닫는 마음'-사전 정의-이기도 하다.
아, 가을
해방구역에 진입한 느낌.
새로 사랑을 시작하는지 싱거운 중늙은이가
피리(reed) 몇 개 빠진 풍금 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