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3
낮 기온 화씨 101도,
회상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기온이지만
이미 기운 줄 아는데 전망하기도 그렇다.
하기야 이면수(二面獸) 야누스(Janus)는 정월(January)에게만 그 이름을 빌려주지는 않았다.
어느 때라면 돌아보기와 바라보기를 같이 하지 않을까,
가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독립군 밀사도 아닌 터에)
일년에 두어 번 그것도 몰래 들리는 사람의 발길이 탄로 나서 동네사람들이 모였다.
(군자금을 모아온 것은 아니고)
"날이 밝으면 멀리 떠날 사랑하는 님과 함께"라는 정서가 그들을 움직인 것이다.
성찬(聖餐, communion), 애찬(愛餐, love feast), 얘기 나눔, sing-along으로 이어졌다.
고향 떠난 지 오래 된 사람들이라-40년쯤 된 이도 있거든-
알만한 노래래야 "모닥불 파워 놓고" 따위 골동품, 선구자, 고향생각 같은 썰렁 시리즈.
전에 같이 자리한 적이 없는 부부가 끼여들었다.
나오미 자매가 끼를 감추지 못해 시 낭송을 하는 바람에
'만남'(노사연 풍으로)까지 제창하게 되었다.
(노래방 기기 평가로는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을 수준이지만.)
(... ...)
순수한 인심이 꽃피게 하소서
도란도란 마음이 통하게 하소서
길을 가다가 누구를 만나도
한 식구가 되게 하소서
아름다운 만남 되게 하소서
아직 낯선 이의 '오버'를 품을 수 있음이 '공동체성'(Gemeinsamkeit)을 이루게 된다.
'아름답다'는 말은 껴안을 만하다는 뜻.
(아름 = 두 팔로 안을 만한 둘레 + 답다)
나 아닌 것을 나답게 여기면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내친 김에 쏟아지는 시들 중에...
김기만 시인의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인터넷 상에서 '김기남' 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퍼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누구의 가슴 앞에서라도
바람 같은 웃음을 띄울 수 있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헤어짐을 주는 사람보다는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늘 들꽃 같은 향기로 다가오는
그런 편안한 이름이 되고 싶다
제일 먼저 봄소식을 편지로 띄워 주고
제일 먼저 첫눈이 내린다고
문득 전화해서 반가운 사람
은은한 침묵의 사랑으로 서성이며
나도 몰래 내 마음을 가져가는 사람
아무리 멀어도
갑자기 보고 싶었다며 달려오는 사람
나도 누군가의 가슴에서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이름이고 싶다
이동진의 '사람을 사랑하며'
이 땅에 살아가면서
무언가 눈에 뜨이는 일을 하기보다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내 땅을 넓게 가지려 하기보다는
빈터마다 은은한 백향목을 심으며 살고 싶다.
나무향을 맡으며
때로 감동하며 풀밭에라도 펄쩍 누우면
하늘빛 푸르름이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내를 이루어 흐르는 물 위에는
기쁨이 출렁거리는데
한 몇 십 년 살아가는 게
이렇게 고마운 것이라면
살며
살며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쫌... 그렇지만~
어때 뭐?
당신 말은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람들과 풀밭에 누워
같이 유치 모드로 기분 좋게 유영(遊泳)하는 게 사랑 아닌가봐?
아하, 그리고 '愛'는 '아낄 애'라고 그러더라.
언제 다시 볼지 기약할 수 없지만
떠나있는 동안에도 아껴주기로.
이 가을에 더 많은 것 품고
아름다움을 늘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