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4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간다고 할지 온다고 할지
뭐 그런 걸음이었는데
여하튼 도착했으니까
잘 왔다고 소식 전해요.
오기 싫고 가기 싫고
헤어지기 싫고
그럴 것 없다.
올 것은 오고 일어날 것은 다 일어난다.
(머피의 법칙 아님.)
“내 그럴 줄 알았지”할 것도 없고
그냥 맞이하면 된다.
열음(여름)이 없으면 어찌 거둠(가슬, 가을)이 있겠는가.
견디기만 했지 만남과 섞음이 없었으니
혹 낳더라도 무정란일 게야 하다가도
늦게 찾아온 나비로 몸을 떤 적이 있기에
날짜를 꼽아본다.
여린 가지에 열린 게 많아
끊어질 것 같은 해도 있었다.
(그때도 자랑스럽다기보다는 무겁기만 했지.)
해거리라도 그렇지
올해는 달린 게 없다.
(기운 차리려고 쉬는 중이라고 하자.)
이성선이 그랬던가
“가을의 기도는/ 잎 떨어진 나무 아래서/ 자신을 비우는 일입니다”라고.
김형영은 또
“지금은 가을/ 우리 잠시 이별을 하자” 그랬고.
응, 왜?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그런 황당한 거짓말은 뱉지 마
그렇지만 떠났기에 사랑인 줄 알았다는 건 말 되네.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 해보고 싶어서 떠날 수는 있거든.
가을을 나기 위하여 새 애인 만들지 마
부재 때문에 비로소 확인한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