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5
가을 장터
모두가 외로움을 팔러온 보따리장수
남의 외로움은 사주지 않고
제 외로움만 사달라고 조른다.
(나태주, ‘시인학교’)
저는 뭐 팔 게 없어요.
그렇다고 사러 나온 것도 아녀요.
가지고 갔다가는 물러달라고 그럴 게 뻔하거든요.
장날 그냥 구경 나온 거여요.
가슴에 새긴 이름
가랑잎 종이 위에다
평생 이름을 적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슬픔이더냐
차라리 실컷
물 위에 달빛 붓으로 글을 쓰겠다
(이성선, ‘물 위에 달빛 붓으로’ 山詩 31)
물 위에 구름이 떠있고
물 속에 나무가 잠겼고
덩달아 그대도 들앉았는데
어디 잡히겠어요?
남아있기나 하겠어요?
물 위에 써봤자 구름에 새겨봤자
남을 이름이 아닌데
차라리 가슴에나 새겨두어요.
들킬 염려 없다는 건
못 알아봐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안 그런 척 잊어버린 척하며
살날이 너무 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