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
연하고질(煙霞痼疾)이니 천석고황(泉石膏肓)이니 하여도 형편이 안 되면 어떡하겠는가.
중학교 때 등산반에 들었으나 “주일에 예배 안 보고 어디를?”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나오나, 선배들에게 매 맞고 나왔지.)
그 후 평생토록 ‘聖守主日’-“아휴, 이젠 좀~”-에 걸려 나다니지 못했다.
별 볼 일 없이 지내던 정철, 강원도 관찰사에 봉하여지자 얼마나 신났겠나,
관동별곡이 이렇게 시작된다.
“江湖애 病이 깁퍼 竹林의 누엇더니...”
(부럽다.)
‘끼’는 많은데 풀 길이 없었는데,
굳이 김진형의 ‘북천가’가 아니더라도 “청산이 그림 되어 술잔에 떨어지고”쯤은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냥 노래만. 또 다시 “에휴~”)
수작’이라는 말.
수(酬)는 권함이고, 작(酌)은 따름이다.
받아먹고 가만있겠나, 반배(返盃)하니, 오고 가고,
그러다 보니 말은 “딱 한 잔만...”이었는데 두주불사(斗酒不辭)가 되는 것이다.
그쯤 되면 ‘허튼 수작’이 되고 만다. 흘리고, 엎지르고, 쏟아지고, 흠, 딴 생각도 나고.
보수(報酬)란 무슨 큰돈으로 갚는 게 아니고, 고맙다고 한 잔 따라주면 되는 것이다.
등불 아래서 속이 들여다뵈지 않는 잔에 따르자니 어림잡아 헤아려야 했겠고(어림 斟酌),
그래서 정상참작(情狀參酌)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 얘긴데... ‘개수작’이라는 말은 어떻게 나온 건지 모르겠다.
개가 주거니 받거니 할 수도 없는데.
(하긴, ‘개-’라는 접두사는 “참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닌 함부로 된 것”이라는 뜻으로
따라오는 명사의 품격을 떨어트리는데 사용되니까.)
대낮에 개꿈 좀 꿨기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야단치는 이가 없으면 좋겠다.
(김새구로!)
곡차 생각나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槪)를 구경(求景)을 가세”라는 타령.
(아니다, 지금은 가을이니까 나들이 가자고 꼬드기자면 뭐라 해야 되나, 단풍놀이?)
될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리고, 이젠 혼자 다니기 좀... 그렇더라. 이거 “에휴~” 삼창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