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7 집으로
가을 물빛이 참 곱다.
일렁임 없는 호수에 산 그림자 고스란히 그리고 고즈넉이 드리우듯
번뇌 없는 마음에 만물의 이치가 여실히 드러나면 좋겠구나.
그래도 바람이 있는데 수면이 늘 잔잔할 것도 아니고
반짝임, 물비늘, 추파, 출렁임, 굽이침을 어쩌랴
그래서 고운 것을.
현상(現象)의 그릇에 담기지 않은 실상(實相)이 있을까?
떠오르는 생각들 주워 담을 것도 없지만...
그리메 흔들렸다고 산이 흔들린 것은 아니다.
워낙 산이 크니까 느끼지 못하지만 산도 더러 흔들린다.
산은 생명을 품고 있고, 생명은 변화하며, 전체로서의 산은 변한다.
모든 것은 흐르고(All flows), 모든 것은 변한다(Everything is in process).
어느 것이라도 다른 것들과 이럭저럭 연결되어 있다.
(실은 이런 얘기 너절히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었는데...)
{난 해인삼매(海印三昧) 같은 것 알지도 못하고 바라지도 않거든.
그냥 흔들리고 싶어.
땅의 단단함이 싫어 출렁거리는 바다로 되돌아가려던 ‘Sea Fever’ 있지?}
오는 줄 모르게 왔던 봄이 가는 줄 모르게 간 다음에
만남이 없이-아니다 다가온 것을 잡지 않았지, 지나친 것을 부르지 않았고- 가버린 세월을
번번이 애석히 여겼는데
올가을은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다고?
알아, 또 엇갈릴 줄.
난수표 해독에 실패해서, 아니면 대간첩작전 등 외부 요인으로
남파공작원과 호송원이 접선하지 못하듯
(에이 그런 얘기 말고 눈물 좀 자아낼)
에반젤린과 가브리엘처럼 자꾸 어긋나게 되는.
해서 차라리 그리움 벗어 걸어두고
붙잡고 있던 ‘행여나’ 자락 선선히 놓고
어진 아내의 뜨개질 속도 같이 일정한 걸음으로
집으로!
(집? 어딘데?)
요즘에야 그런 노래 부를까마는
아늑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련히 등잔불 비칠 때~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Then in dreams I go back to my home
I can see that old lamp in the window
It will guide me where ever I ro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