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갈 데가 있어서도 아닌데,
우리는 떠나는 꿈을 꾼다.
집이 있으면 떠나게 된다.
(돌아올 데가 있으니까 떠날 것이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니까,
떠나지 않았으면 돌아올 길이 없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When he came to his senses)”(눅 15:17)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 15:20)
(아래 그림은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이다.
일단 아버지의 손과 눈에라도 주목하기 바라지만,
누더기 설명으로 묵상과 감동을 방해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