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8 헤어진 적 없어요
여름의 기억으로 못 견디겠다든지 그렇진 않아요.
생명의 기운을 뽐내던 초록이 바래기는 했어도
아직은 나팔꽃, 봉숭아, 해바라기와 더불어 남아있네요.
생강꽃 향기처럼 뜰을 가득 채우던 웃음도 다 흩어지진 않았고요.
안개가 많이 끼어 운전하기 힘든 새벽에는 그런 생각 들더라고요.
“오늘은 파랗다는 이름으로는 그보다 더 어떻게 될 수 없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 보겠구나.” 라는.
가면 가버린 게 있었음이 고맙고
갈 것이지만 있는 동안 같이 있음을 즐기면 돼요.
한번 스침으로 이룬 접점(tangential point)이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면
만남만 있었지 헤어짐은 헤아릴 것도 없고
관통은 빠져나갔다는 뜻이겠지만
스침은 그대로 응결되었으니까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내 안에 머묾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