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9 그저 그만하다는 인사
“벌어먹고 사는 일이 쉬운 줄 아냐? 죽기 살기로 달라붙어도 될까 말깐데...”
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지만...
죽기 살기로 달라붙지 않고 살아온 나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다.
있던 자리
없는 듯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아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인데
있나마나 한 것으로 여기고
아예 없애버린다
있기는 있어야 하니까
기왕이면 다홍치마로 구색 맞추겠으나
야단스러운 걸 데려왔다간
야단나는 줄 알기나 하는지
있는 자리
그렇게 안 되었겠지만, 그랬다면?
소식(蘇軾)이 높은 자리에 올라 오래 지키고 있었다면?
우리는 재미없는 거지.
째지게 가난한 동네로 쫓겨 가서
돼지고기나 즐겼지만,
동파육(東坡肉)을 남겼으니
황주 사람에게 은혜를 입혔다.
명리(名利)를 구하지 않았다면
속상할 일 없겠고,
서호에 배 띄우니
부러울 것 없어라.
그의 형편이 좋았다는 게 아니고,
그 때문에 우리가 괜찮다는 얘기.
이 가을날에
“부공적취여운연(浮空積翠如雲煙)”이라 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