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해(年) 저물어 가는데

지금 “언제쯤?” 그러면 ‘내년 언제쯤’이 될 것이다.

 

“그게 말이 돼?” 그럴 것 없다.

과도하지 않은 기다림이 있겠는가.

짧은 기다림도 길게 느껴져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도 있다.

지나고 보면 언제 그리 빨리 갔는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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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으니 다시 보고 만나고 하고 이루고 싶을 것이다.

“당장은 아닌 줄 알지만”, “‘곧’이 아니라 해도” 그러면서 소망은 기다림의 터널을 지나가게 될 것이다.

 

올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기다림

임박한 줄로 믿었는데 끝없이 연기됨

그래도 소망을 잃지 않음

그것이 유대교의 종말적 신비이고

재림(parousia)을 고대하는 초대교인의 신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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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졌으니 그렇게 끝난 것(一回的).

기다림은 그치지 않으니 진행형.

언제부터? 모란이 뚝뚝 떨어졌을 때부터.

얼마나 오래?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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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라는데

그야 영글었으니까, 다 이루었으니까 끝날 때가 된 거지.

인연이야 끊어지겠는가, 그저 한 사이클이 마친 셈인데

영결(永訣)도 아니고 형편이 여의치 않아 잠깐 보지 못하게 된 거지.

 

잠시라도 떨어져있음은 섭섭하니까

헤어짐의 예식으로 소매를 잡기에 몌별(袂別)이라 그랬겠다.

가야 하는 줄 알지만 그래도 잡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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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필 때 보자!

무슨 꽃?  그건 초점 없는 질문인데,

달래자면 대답은 해야지. 보자...

독하지 않은 겨울에는 동백을 볼 수 있겠는데 그러자면 남도로 가야 할 것이고

여기서도 매화는 일찍 피니 그때로 잡을까?

가만있자, 그건 까딱수에 놓쳐버리더라.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 호시절(好時節)은 ‘우리’만의 특별한 날이 아니니까.

철없는 꽃들이 철 없이 피어대니 ‘꽃’으로 지정한다는 게 그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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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멀리 있는 벗에게 찻잎을 따서 보내며 쓴 글(皇甫苒, ‘送陸鴻漸棲霞寺採茶’)에

“何時泛碗花(하시범완화)”라는 구절이 있다.

언제쯤 찻잔에 꽃 띄우고 마주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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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라 묻지 않고 “언제쯤!”으로 기다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