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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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더 기다려야 하니 지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꽉 차지 않은 십사야 달이라는 게 그저 그렇다.

일어난 후로 문밖에 나가지 않다가 잠들기 전에 바람이라도 쐬자고 나왔다.


달을 바라보고 걸으면 물러나는 듯하고

등지고 걷다가 돌아보면 달은 따라오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팍 고개 돌리면 “헛~”하고 황급히 선다.

“따라가긴 내가 왜?”하며 시치미 떼려는 뜻인 줄 안다.

하긴 멀어진다고 더 멀 것 아니고 다가오는 듯해도 더 가까워지지 않는 절대거리.

거리와 거리감이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


“때로는 보고파지겠지 둥근 달을 바라보면은” 모드로 돌입하여

일단 앉고 보자고 나무 밑으로 다가서면

어둑한 자리를 미리 차지한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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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야 과한 듯싶지만

힘들어하는 이들은 “맞아, 내가 그래”할 것이다.

공주로 자랐던 친정에는 가보지 못하고 꼴 보기 싫은...

해서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정서가

저희들이 경험하지도 못한 ‘반보기’라는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뭐라는 말인 줄 다시 설명할 것 없겠지만)

반보기는 양가 마을의 중간쯤 되는 데에서 만나는 것이라서 그렇게 이름 붙였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도 했고.

혹은 하루해의 반나절만 보는 것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라”고 그러더랬지.

출가외인이라는데, 근친(覲親, 歸寧이라고도 했다)이 잦겠나,

허락하지 않아도 요구할 수 없는 것이고

며느리가 친정 다녀오는 것을 크게 선심 쓰듯 베풀던 시절인데,

가을걷이 끝나 일손 바쁘지 않고 마음도 넉넉해지면

몸종 같은 며느리가 한낮을 비우는 것쯤 눈감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

사무치게 그리운 정과 살점이 떨어져나가 만든 자식 사랑을 막을 수도 없고

이미 도져 병이 깊었는데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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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편 민요 모음 「딸아 딸아 연지 딸아」에 ‘반보기’라는 노래가 실려있다.

 

    하도하도 보고 저워/반보기를 허락받아/

    이내 몸이 절반 길을 가고/친정 어메 절반을 오시어/

    새중간의 복바위에서/눈물 콧물 다 흘리며/

    엄마 엄마 울 엄마야/날 보내고 어이 살았노/

    딸아 딸아 연지 딸아

    너를 삶아 먹을 것을/너를 끓여 먹을 것을/

    그랬더면 니 꼬라지/이리 험악하지는 않지/

    밥 못 먹고 살았구나/잠 못 자고 살았구나/

    금옥 같던 두 손이사/갈구리가 되었구나/

    구실(구슬)같은 두 볼이사/돌짝밭이 되었구나/

    금쪽 같은 정내 딸이/부엌 간지(강아지) 다 되었네

     (… …)


시댁 식구 흉허물과 사돈댁 원망을 레시타티브와 이중창으로 읊어대다가

시대가 그런 걸 어쩌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살아야 한데이 살아내야 한데이

    죽드라도 그 대문 안에서/ 한 발자욱도 나오지 마라

    그 집 구신 돼야 한데이/ 출가외인 내 딸이야


몸 건사 잘 하라는 당부를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보내려는데

그래서 일어나기는 했는데

“어여 가그라” 하며 떠밀다가 도리 없이 다시 한번 안아본다.

딸이 뭐라 하는지는 소설 그만 쓰련다.


눈물로 가렸으니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보겠나

온 보기 아니니 그래서 또 반 보기이다.


볕바르고 평평한 바위에 ‘정받이’ 음식 펴놓고 울고 웃다보면

설움 풀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버리고

헤어지기도 전에 새 그리움은 위험수위까지 차오르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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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과 시댁 중간에서라는 반보기야 없어졌지만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이 제법 많으니까

하와이쯤에서 보면 되는 것인가...

 

그게 “올 생각 말고 돈이나 보내요”로 몰리다보니

중로보기는커녕 ‘언젠가는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가 되기는 될까?

그런 것에조차 의문부호를 붙이게 되기도 한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이게 사는 건지...”라는 후회, 회의, ㅎㅎ.

 

그런 이들 있으면 우리 한자리에 모일까?

돈 안 들고 청승맞지 않은 모꼬지 한판 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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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먹어보지 못했지만

(죄송, 실물이 없어서 사진 찍지 못했음)

봉지햅쌀 사다가 지으니까 맛 괜찮더라.

같이 먹고 싶은데 누굴 부를지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라고 방송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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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楓葉無數黃金錢

                                                                                                                저 잎들이 다 금화라면?

                                                                                                                맞아죽을 것이다.

                                                                                                                 (나무 밑에 누워서 해본 생각.)

 

 

 

(당신이 어떤 형편인지 알 리 없지만)

지금 사랑하는 이, 같이 있어야 할 분과 떨어져 산다면 말이지요,

들리는 노래 John Denver의 ‘Annie's Song’의 가사를 염원으로 뿜으면...


    You fill up my senses

    like a night in the forest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like a walk in the rain

    like a storm in the de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Come let me love you,

    let me give my life to you

    let me drown in your laughter,

    let me die in your arms

    let me lay down beside you,

    let me always be with you

    come let me love you,

    come love m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