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14 시작은 아니지만

 

十六夜


십육 야 달은 쳐다보기 민망할 것 같아

못을 먼저 내려봤는데 아직 괜찮아 다시 치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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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더 가면 이지러짐이 두드러지는데

그렇다고 아주 쇠망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니다.


Winston Churchill이 그랬다.

“This is not the end.  It is not even the beginning of the end.

But it is, perhaps, the end of the beginning.”

(Speech given at the Lord Mayor's Luncheon, London, November 10, 1942)


그래, 이울면서 시작이랄 수는 없지, 시작은 지나갔다.

그럼, ‘한창’이라는 뜻?


조금 찌그러진 대로 나온 것은 기술상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고

그저 그런 것을 오히려 괜찮다고 두둔하여 남게 된 것이다.


아무러면 어떤가

그릇은 할 말이 없고

토기장이 마음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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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토(陶土)의 변(辨)

 

         도공의 손에 온전히 맡기노라 한 것은

         말짱한 입놀림뿐이었습니다

         심하게 얻어터질까 은근히 겁이나

         물레가 한 바퀴를 돌아올 때마다

         이리 비쭉 저리 비쭉 한 군데로 쏠리며

         툭툭 불거져 나왔습니다

         중대가리 감싸쥔 채 발만 들이밀었고

         쓸모 있는 오른 팔은 등뒤에 감추고

         왼손잡이인 척 왼손만 살짝 내밀었고

         내어 밀던 손마저 거둔 적이 수다했습니다


         이젠 눈 꼭 감고 지긋이 있겠으니

         철써덕 물레 속에 던져 넣어주세요

         노긋한 찰반죽을 만들어주시고

         어질증에 눈이 팽팽 돌아가더라도

         작정하신 속도대로 돌려주세요

         티 검불 주근깨 헌데 부스럼

         제 살에 칼줄 긋기인 원망의 사금파리

         숨었던 것 거죽으로 떠밀려날 때까지

         가을물빛 오지항아리로 말갛게 태어나

         태애앵 탄금 소리 울릴 때까지

 

 

사과를 받고


먹으면 없어지고

먹지 않아도 없어지고

먹는 게 남는 거라던가?


반만 먹은 사과에서

반만 남은 벌레가 꿈틀거리며 떨어진다.

남은 것 마저 먹어 입가심한다.


사과.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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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붉은 마음 알아주지 않았어도 향내는 올라갔다.

보속은 끝났으니까

형벌이었다면 만기출옥이니까

당당하게 걸어가자.

바보스런 짝사랑 이제 그만.

더 괴로울 것도 슬플 것도 없다.


기후 때문이었다고 변명할 수 없는 낙과

잘 익은 것들 골라 따실 때에

눈감고 망태에 집어 넣어주십시오.

자비의 손에 맡긴다는 기도가

소리 되어 흘러나오지 않더라도

엎드린 모습만 보고라도 아실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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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달 앞벌을 흘러가는지

                                                           달이 구름숲을 헤쳐 가는지 잘 몰라

                                                            ‘구름에 달 가듯’이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