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18 대동여지도(B-log)
1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발품 팔아 만든 게 아니라는 설이 있어서 찜찜하지만
걸어놓았던 걸 떼기도 그래서 그대로 둔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만도 아니고
마음으로는 구만리를 더 돌았을 유랑의 궤적
그릴 수만 있다면 대동여지도만 못하겠느냐
나만 돌아다닌 게 아니고
“다닌 데로 말하자면 나도...”라고 나설 사람들 많으니까
꼬박꼬박 여행기 싣는 이들 참 용감하다
사진 몇 장 건지게 되는 여행
지나고 나면 짐만 되고
그래도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빈 구두상자에 넣어두었던 것들
처음에 맘에 안 들었던 것들은 나중에라도 다시 들추게 되지 않더라
박서보, ‘Ecripture no. 900717’
2
보지 못해서 울고 바라보면서 울고 돌아서서 울고
내 몫 다하지 못했으면서도 울지 않는 네 몫까지 울어주고
달랠 사람 찾을 때까지 울고
다행히 그런 사람 다가온 다음에도
“나를 울게 내버려 두오”하며 우는데
에이 흘린 눈물 때문에 강물 불어나지 않더라
나 하나 울음으로 달라진 게 없네
아니 나만 우는 게 아닐 텐데
가을 강은 불어나지 않더라
잊기 싫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
그만 떠내려간다
발 동동 구르듯 안타까운 표정 짓지만
일부러 흘린 것 아닌가
손 뻗으면 건질 수 있었던 게
아주 멀어져간다
3
감잎에 쓴 편지 한 장 날아올 것 같은 날
하늘 한 쪽과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와 이슬 몇 방울쯤 소포로 받고 싶은 오후
택배처럼 찾아온 걸음 있었지만
제 맘대로 기대다가 무게가 되긴 싫다면서
산국 한 묶음 건네고
살랑살랑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