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먹은 듯 해야
노래 부르고 싶은데
막상 부르자면 잘 나오지 않는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
다 못 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진실로
풀릴 거시면은
나도 불러
보리라
{돈 주고 사는 공간도 아닌데 이렇게 풀어 행을 늘리니 아깝다.
끼니를 거르더라도 지필묵은 넉넉히 쓰자는... 험.
(그래도 html 문서 편집하여 옆에 그림이라도 걸어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괜찮은 노래를 남긴 알만한 이들은 한때 잘나간 사람들이었다.
간신의 모함으로 귀양 갔다? 임금의 총애를 받았으니 무고와 참소가 들어간 게지.
전화위복으로 귀양에서 풀려나자 더 잘된 이들도 있다.
위에 실린 시조를 쓴 신흠은 초야에서 일정 기간 대기하다가 영의정이 되어 돌아갔다.
그렇게 변방으로 밀린 사람들은 뭘 하며 지냈을까?
발분(發憤), 그래서 노래를 지었다.
{‘시경(詩經)’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닌가?}
시 짓고 노래 불러 풀릴 수만 있다면.
막힌 게 뚫리고 닫힌 게 열리고 맺힌 게 풀어진다면.
{그런데, 노래방 말고는 어디 가서 노래 부를 데 없니?
나 같은 사람도 끼워줄 무슨 시시한 시사(詩社) 같은 것 없냐고?}
어쨌거나...
택한 것은 아니고 피할 수 없는 궁고수사(窮苦愁思)가
빼어난 노래 몇 줄 건지는 필요조건이 되겠느냐는 얘긴데...
실수로 흘린 듯 천박한 떠다니는 가락 한 자락.
(소학교 삼학년 때 흥얼거리다가 욕을 바가지로... 나의 유년시절은 그런 유린 속에서...)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
그렇지 않은가?
배부른 새는 울지 않고
이별이 없다면 그 숱한 노래들-뽕짝만도 아니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고르지 않으니까 우는 것이다(不平則鳴).
(음, 고전을 돌아보기엔 가방끈이 짧다만...)
구양수 이래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지 않았는가?
궁한-가난하고 몰리고 막힌- 형편이 고운 노래를 빚더라는(詩窮而後工).
문장이 좋아졌다고 해서 형편이 나아지냐 하면 그 반대더라는(詩能窮人).
소동파는 시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고 그랬다만(非詩能窮人).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굳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은 유효하다(窮者詩乃工).}
점심시간마다 고민한다.
돈 6,000원-공이 세 개나 된다. 미화로는 6불인데-으로 무얼 할까?
가정식 백반, (gourmet) 커피, 시집
‘And’가 아니고 ‘or’이라서.
오규원은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그렇겠지-라는 그의 시집에
‘프란츠 카프카’라는 쪽지를 끼어 넣었다.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앞부분 -MENU-는 싣지 않았다. ‘공부’에는 왜 방점까지 찍었는지, 쩝...}
네가 제 정신이냐, 시가 밥 먹여 주냐, 나 보면 몰라?
“다른 재주 없어 시라도...”로 나오면 말릴 수 없다만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다고 쳐주지 않는
그래서 값나가지 않는 그런 것 말고
예쁜 포장에 튀는 이모콘까지 쳐발라
잘나가는 것 많이 팔아 잘살기 바란다...
그런 자조였을 것이다.
그래도 당신은 카페에 앉은 모양일세.
슈퍼 앞 나무의자에 앉으니 서쪽하늘이 더 곱구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여기서 그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은 너무 통속이 되어.}
괜찮다니까... 정말이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는 말씀조차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고쳐야 마음이 편한 사람들이
알 것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