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19 들국화
‘들국화’ 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고.
(‘한국인’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사람을 본 적은 있다.)
내 알지.
그래서 하는 얘기야.
{옛적에 장미화가 어느 살롱에서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를 부를 때에
한 취객이 “야 너는 허구한 날 또 만났군요야? 그거 말고 없어?”라고 야유를 보내자
가수는 그를 향하여 감자바위를 먹였고... 그래서 난장판이 되었더라는 얘기.}
좋은 노래는 또 부르는 거지.
그 가수 부르는 건 그 노래 부르라는 얘기 아닌가?
다 아는, 좋다 해도 “이제는 그만” 싶은, 그래도 또 나오는 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러니 서로 이름을 부를 수 있어야 되겠네?
누구라도 이름이 있어야 되겠네?
추가로라도 내가 불러줄 이름 지어야 되겠네?
서양 언어에서 ‘이름(nom, Name)’이라는 단어는 ‘되다’(ginomai), ‘알다’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되었으며, ‘기호’(gnomen)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니, 알지 못하면 이름을 부를 수 없겠네?
이름대로 된다는 뜻도 있겠고.
{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이는 번역하면 ‘짱돌’이라)}
사람을 알지 못해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경우가 있겠다.
“친애하는 애국 시민 여러분”처럼 다수를 성의 없이 상대할 때뿐만 아니라
일대일의 경우에도 ‘사장님’, ‘아가씨’, ‘저기요’, ‘선생님’ 등의 호칭을 사용할 때가 있다.
{아, 그 석순옥이 안빈을 “선생님~”이라고 했던 거야 이름을 몰라서는 아니겠으나.}
이름이 필요 없이 된 경우도 있겠다.
줄여서 선, 숙, 옥, 희... 하다가 그렇게 부를 이유도 사라지면
{이름은 다른 것들과 구별하자고 붙이게 되었는데, ‘하나’뿐인 것에는 굳이 이름을...}
그냥 당신, 여보, honey가 되기도 한다.
{누가 ‘당신’이 우리말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몰랐어? 말없을 당, 말 못할 신이네.”라고 알려줬다.}
요즘은 디카, 검색창, 잘 만든 식물도감 덕분에 들꽃 이름을 많이들 아는 것 같다.
조국강산을 돌아다니지 못한 나는 산야와 그 안에 사는 것들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고
사람 얼굴과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터에 하물며 초목의 이름이랴.
한 차례 산행을 다녀와서 이러저러한 들꽃들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을 볼 때마다
찬탄을 금치 못한다. 음,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었네”처럼.
그래, 잘 모른다.
“모른다고 어쩔래? 배 째.” 그러는 건 아니다.
창피하지 뭐.
그렇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도
“그런 분별지(分別智)를 잴 것 있나? 그냥 좋아하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반론.
그야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것인 줄 몰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안도현도 그렇게 고백했더라.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
-안도현, ‘무식한 놈’-
무식한 걸로 치자면 나는 훨씬 못한 놈이다.
새 코에 땀-새 발의 피가 맞는 말이던가-만도 못한 걸 알면
문둥이 앞에서 고름 짜기로 난 척하고 싶은 놈이다.
그렇지만, 이제껏 그랬듯이 나란히 걷는 게지
이제 와서 새삼스레 절교라니?
그런데, 쑥부쟁이와 벌개미취와 구절초를 딱 부러지게 구별할 줄 안다고 치고
쑥부쟁이라고 하더라도 가새쑥부쟁이, 개, 까실, 섬, 갯...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얼추 열두엇을 헤아릴 것이고
구절초의 종류를 꼽는다고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며
개미취라고 해서 단일민족(?)을 내세우지는 않을 터인데...
뭘 좀 아는 사람이라고 다 알겠느냐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학명으로 구별되기는 하지만) 그냥 aster라고 부르는데,
New England에 널려 있다고 해서 New England Aster,
“NEA라고 다 같은 aster가 아니고 Upper New York에 가면 많이 보게 되는 것 있지?”
그러면 New York Aster가 되고,
보라색이면 purple aster, 하얀 색이면 white aster라고 그런다.
한국인들의 들꽃 사랑이 별나서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채취하기도 하고
묘포나 종묘상에서는 화단에 심으라고 대량재배 유포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아 좋구나, 참 예뻐.” 하고 그냥 지나간다.
들꽃은 산과 들에서 보면 되지 환경도 맞지 않는 도시 화단에 들여올 이유가 없다.
바른 이름 불러주지 못해 미안하다.
남들이 모두 그렇게 부르는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하다고 그러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당신이 그렇게 부르고 싶은 이름 하나 붙여주셔요” 그런다면...
성가신 척 하는 표정 슬쩍 스쳐간 다음에
너를 두고 한참이나 생각하게 될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 널 들여다보다가 자리를 떠났다고
너를 잊지는 않을 것이다.
짙어서가 아니고 화려해서가 아니고
가녀림, 옅음, 그렇다고 슬프지만은 아닌
초라하기는커녕 품위유지의 자존감이 파란 하늘 끝까지 닿을 너를
뭐라고 부르든지
너는 내 눈과 마음을 바라보면서
관계의 깊이를 가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