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몇 해 전 텍사스에 살 때 기막히고 숨 막히고 살 길이 막막할 때
아 산에라도 올라가서 소리라도 질러봤으면 할 때 주절거린 게 어디서 굴러 나와서...
한국 돌아왔으나 산에 다니지 못한다. 오늘도 직원들은 등산대회로 휴무인데...}***
한반도에는 산이 많다.
가친께서 몇 해 은거하신 강화도에도 산이 많다.
그때 옆집 사는 이에게 인사로 일렀다.
“어쩌면 이 작은 땅에 산이 그리 많은지, 그 산들이 하나같이 우뚝 솟았네요.”
그러자 그가 우쭐하는 태도로 말을 받았다.
“나도 텍사스에 가봤지만, 이 강화도의 산들을 쭉 펴면 지표면이 텍사스보다 넓다 이겁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남북한 합한 면적의 세 배가 넘는다고 대꾸할 것도 없다.
그래, 여긴 산이 없어. 내 산이 그리워서라도 다시 돌아갈 거야.
산에는 고개가 있다. 큰산을 넘자면 여러 고개를 지나야 하던 걸.
‘산 넘어 산’이라는데, 그 산 다 넘는 게 아니더라도 고개는 넘어야 한다.
딴 얘긴데, 몇 고개를 넘어야 인생이 풀릴는지...
넘기는 넘어야 하니까.
그가 넘어야 할 고개
그건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지요
한 고개 넘어 또 한 고개
웬 고개가 그렇게도 많은지요
우이령 넘고 우듬재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박달재 넘고 추풍령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웬 고개가 그렇게도 높은지요
새재 넘고 고모령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다섯 고개 여섯 고개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천양희의 ‘스무 고개’중).
가야할 길이라면 넘어가야 할 고개가 많은 줄 알고 떠나는 것이다.
고개에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
믿는 이들은 그런다. “주님께 의탁하자”고.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이라는 노래도 있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해서 산이 평지가 되고 고갯길이 신작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고통과 역경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척척 잘 풀리다가 사망과 멸망의 광장에 도달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숨겨진 좁은 길을 가면서 위로를 발견하기도 어려웠는데
영광의 나라로 다다르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런즉, 현실적으로 어렵고 힘들고 맥 빠지는 길에서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이’ 길을 걸읍시다... {~라는 설교가 있었다나.} ***
지리산만 백 번 이상 올랐다는 이성부, 그만 하면 도산데,
산에는 길이 없나,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그러면 어떡해?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들 열어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그런데 말이지,) 길은 만드는 걸까, 발견하는 걸까?
있어서 길이 아니라 만들었기에 길나는 것 아닌가?
결국 ‘저마다 제 길’ 아닌가?
{그리고 네 마음 깊은 곳을 찾아가자면 말이지,
길 내면서 가야할 텐데, 그거 해치고 다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는 게 낫겠어.
모르면서도 좋아한다고 그러고.}
요즘 내 형편이 그러네.
가자면 못 갈 것도 없는데, 막상 가자니 뚜렷이 갈 데가 없구먼.
그야 뭐 이 나이에 다 그렇겠지?
나만 한심한 처지 아닌 거지?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 ...)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김소월, ‘길’)
에고, 밀려가든지, 끌려가든지, 끌고 가든지,
가긴 가는 건데,
뭐 이리 돌아볼 게 많으냐,
안 가겠다는 것은 아닌데
붙잡는 게 많다고?
붙잡기는 누가?
그냥 제 마음이 미적거리는 것이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 ‘가는 길’)
‘길’을 메시지화(化)하자면 (나이 들면 교훈 남기기를 좋아하니까)
윤동주 소년의 ‘새로운 길’ 같은 걸 읊어야 하겠는데,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그렇다고 그가 명랑한 행진곡 풍의 노래를 부른 건 아니었다.
그 나이에 잃은 게 얼마나 있다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주행 한다 해도 얼마 안 걸릴 텐데
그래도 애어른 할 것 없이 잃은 것이 있어서
행여 찾을까 싶은 마음 버리지 못해서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길’)
잃은 것 찾겠다고 향방 없이 헤매는 것은 아니고 대충 갈 만한 데가 뻔한데
그거 다 ‘밤으로의 긴 여로’ 아닌가?
어두우면 길 찾기 어려워 백야(白夜)였으면 좋겠지만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밝기만 하면 쉬지도 못할 테니까...
욕할 줄 몰라 그저 나올 만한 말이
에휴,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