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는 가을
매향 밤공기를 흔들 적에
목련 꽃잎 다 흩어지기 전에
안기엔 너무 끈적거리는 무더위 오기 전에
한번 보자고 그랬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보챌 것도 아니고
내가 말을 꺼낼 것도 아니어서
만나자고 그런 건 아니지만
가을이 아주 가기 전에
수북이 쌓인 가랑잎 다 치우기 전에
눈 내리기 전에
우연인 듯 마주치고 싶었다.
추위가 다가오는 듯 하더니
가을도 겨울도 미적거리고 있다.
그러니 우수로 얻은 몇 날
용기를 짜내어 청했더라면
잔볕과 숲의 빛깔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ㄹ 것’과 ‘~ㄹ 걸’ 사이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그건 뭐 지난 일인 줄 알고 잊어버리겠는데
떠나자고 하면 갈 수 있는 때에
제비 한 마리 아직 남아있어
자꾸 걸린다.
그만 가라고 타이르지 않았다.
혼자 가기엔 너무 먼 길이어서.
주일 오후
연세대학교 교정을 걷는데
하늘은 하늘대로
단풍은 단풍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너무 고와서
그 뭔가 ‘Gloomy Sunday’를 반복해서 듣는데도
도무지 우울해지지 않는다.
{별일이야, 왜 죽지?}
그리움은 그리움이고
그래도 열심히 살면 되고
가을은 아직 가지 않았다.
아기 베짱이가 엄마에게 품신한 건의사항
“우리도 개미들처럼 겨울을 대비하여 양식을 모아야 하지 않겠어요?”
“내 아가 참 똑똑하구나.
우리에겐 겨울이 없단다.
노래 부르는 동안에는 겨울이 오지 않고
겨울이 왔을 때는 알지 못하니까
우리는 그냥 새 노래 지으며 살면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