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는 가을


매향 밤공기를 흔들 적에

목련 꽃잎 다 흩어지기 전에

안기엔 너무 끈적거리는 무더위 오기 전에

한번 보자고 그랬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보챌 것도 아니고

내가 말을 꺼낼 것도 아니어서

만나자고 그런 건 아니지만

가을이 아주 가기 전에

수북이 쌓인 가랑잎 다 치우기 전에

눈 내리기 전에

우연인 듯 마주치고 싶었다.

 

 

                                          6111301.jpg   6111302.jpg

 

 

추위가 다가오는 듯 하더니

가을도 겨울도 미적거리고 있다.

그러니 우수로 얻은 몇 날

용기를 짜내어 청했더라면

잔볕과 숲의 빛깔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ㄹ 것’과 ‘~ㄹ 걸’ 사이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6111306.jpg

 


그건 뭐 지난 일인 줄 알고 잊어버리겠는데


떠나자고 하면 갈 수 있는 때에

제비 한 마리 아직 남아있어

자꾸 걸린다.

그만 가라고 타이르지 않았다.

혼자 가기엔 너무 먼 길이어서.

 

 

6111309.jpg

 

 

주일 오후

연세대학교 교정을 걷는데

하늘은 하늘대로

단풍은 단풍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너무 고와서

그 뭔가 ‘Gloomy Sunday’를 반복해서 듣는데도

도무지 우울해지지 않는다.

{별일이야, 왜 죽지?}

 

 

    6111303.jpg   6111304.jpg

 


그리움은 그리움이고

그래도 열심히 살면 되고


가을은 아직 가지 않았다.

 

 

                                                                         6111305.jpg

 

 

아기 베짱이가 엄마에게 품신한 건의사항

“우리도 개미들처럼 겨울을 대비하여 양식을 모아야 하지 않겠어요?”

“내 아가 참 똑똑하구나.

우리에겐 겨울이 없단다.

노래 부르는 동안에는 겨울이 오지 않고

겨울이 왔을 때는 알지 못하니까

우리는 그냥 새 노래 지으며 살면 된단다.”

 

 

            6111310.jpg

 

 

61113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