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여행
이박삼일의 짧은 여행, 그나마 공무가 반이었고, 일행은 threesome의 odd combination이었지만...
좋았다.
환대에 몸 둘 바 없었는데
제 잘난 줄 알고 우쭐대면 이미 추락하고 있는 중.
넌 뭐냐고?
기쁘게 섬길 줄 아는 이들의 빛 때문에 생긴 제 그림자가 춤추는 꼴을 보고 도취한 못난 놈.
{돈만 있으면 강아지도 멍첨지 소리 듣는 세상이고
환금의 실용가치가 있는 무슨 다른 실력이라도 있다면 걸맞는 대우가 따를 것인데
모르겠구나 나 같은 사람에게도 돌아오는 이 환대는 어인 연유인지.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오며...}
여름 내내
구름 향해 손짓해댔지만
뜬구름은
대답 없이
웃는 듯하다가
그냥 갔다.
비가 오고
또 비 오고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그렇게 질질 끌었지만
구질구질하던 장마도
언제 가는지 모르게 갔다.
먼 하늘 한 귀퉁이에 옹기 파편만한 먹구름이 잠복했음을 눈치 챈지 얼마 안 되어
스스스스 잎 떨리는 소리가 나고
폭풍은 마적 떼처럼 들이닥쳤다.
그래도 해질 무렵에는
보라색 서기(瑞氣)가 산발한 숲을 에워쌌다.
늦더위로 가을이 온지도 몰랐지만
가을은 참 오래 머물렀다.
(갔나?)
남쪽으로 내려가 보니까
거긴 가을이 그냥 있더라.
늘봄(常春)이라면 상춘(賞春)이 무에 그리 흥겹겠는가?
상추(常秋)? 그런 말은 없다.
겨울 맞이하기 전에 위로하듯 베푼 짧은 친절이 못내 아쉽고
그래서 더 머물기를 바라면서도
가기는 가는가보다 하면서
미적거리는 걸 보고는
그만 가보라고 등을 떠밀기도 하지.
{잡아도 갈 거니까 그러지
정말 가라는 게 아닌 줄 다 안다.}
가지산 석남사, 호거산 운문사, 사리암, 남산, 이름 없지 않을 텐데 모르는 산들
그렇게 다니면서
대추나무에 (사랑이 걸렸는지는 모르지만) 찔리고도 피 흘리지 않는 하늘도 보고
풀의 영광과 꽃의 아름다움을 슬퍼하고
흐르는 물 잡지 않는 바위를 책망하고
비산(飛散)을 준비하는 풀씨들에게 “이시렴 부디 갈다”라고 실없이 한마디하고
갈숲 너머 뿌연 하늘, 맑은 날이면 바다와 맞닿았을 수평선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 ever.}
그래도 사람이 더 곱지
자연은 좋아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건 사람이라고...
숲 속 집에서 먹을 게 없을까봐 조반을 들고 온 분들이 있었다.
배달이었으니 그릇이야 어쩔 수 없었다 치고
음~ 조기 찜, 전복, 더덕구이, 우엉, 도라지, 취나물, 조개국... 뭐 그런 거였다.
{몇 달 만에 만난 아내에게 “남편 잘 두어 이런 대접받는 줄이나 알라”고 한마디.}
고추 말릴 만큼 햇볕도 넉넉히 베푸셨으니
이제 가을을 거두어 가신다고 불평할 수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