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Sunday 17 잘 놀았어요

 

쉬는 날 지나 노는 날이다

하나님과 노는 날

참 맘이 좋다

청설모도 닿을 수 없는 감나무 꼭대기에 앉으신 분을 치켜다보기가 힘들어서

그냥 누워버린다

은행잎은 지저분하고 마로니에 잎은 수직낙하하기에 눈을 찌를 수도 있으니까

눕기 전에 자리 살필 일이다

놀러가는 차림치고는 빼입은 셈이지만

그게 교회 간다고 하고서 나온 걸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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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예배당으로는 딱 좋은 걸

그러셨잖니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삶 가운데서 마음을 제단삼아

얼과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야외예배라 해도 좋고 야단법석이라 해도 괜찮겠지만

그분 좋아하시는 거야 우리랑 노시는 거니까

신나게 놀고 나서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하면 될 일}

 

-말은 존재의 집이고 시(詩)는 말(言)의 사원(寺)이니까...

-너 잘난 척 할래?  그럼 나 가버린다?

-휴 그럼 얼른 창가 하나 불러드리지요


     내 마음 속에 절 하나

     갖고 싶다 절까지는 말고

     단칸 방 암자 하나

     갖고 싶다 암자까지는 말고

     미루나무 우듬지 까치집 같은

     적멸의 골방 하나 갖고 싶다

     그 골방의 처마 끝에서 울려오는

     이른 새벽 허허청청

     이슬 내리는 소리보다 더 맑은

     풍경소리 하나 갖고 싶다


      -허형만, ‘내 마음 속의 풍경(風磬) 하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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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가 그러고 싶다는 얘기지

  나를 즐겁게 해줄 노래는 아니구나

-그냥 좋다고 그러시지

  모르겠어요 이걸 좋다 하실지...

  밥사발 싹싹 비울 게 아니더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당 한 귀퉁이

     개밥 풍성히 주었더니


     먹을 만큼 먹었는지

     남은 밥 맨땅에 엎어놓고


     참새 서너 마리 오다가다

     시장기 때우게 하는구나


     일개미떼 불러 모아

     식량 준비 시키는구나


      -허형만,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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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멍멍이 하는 짓 보고 깨달음이 왔다는 얘기냐?

-흥, 야단치고 흉보고 또?

-야단은?  널 좀 놀려먹는 거지

  그런데 밥 때 된 것 같은데 안 가니?

-(가다듬은 소리로)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이에 입 가리고 웃으시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좀더 있다 갈 거면 네 연애 얘기나 듣자구나

-그렇겠다 다들 아들딸이니 돌보시기나 하지 연애는 못 하시겠네요

-네 얘기나 하라니까


     너를 만나고 온 날은, 어쩌랴 마음에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것 가득 출렁거려서

     바람  불어오는 강둑에 오래오래 서 있느니

     잔바람 한 자락에도 한없이 물살치는 잎새처럼

     네 숨결 한 올에 내 가슴 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그 못 다한 시간들이 마냥 출렁거려서

     내가 시방도 강변의 조약돌로 일렁이건 말건

     내가 시방도 강둑에 패랭이꽃 총총 피우건 말건


      -고재종, ‘출렁거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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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이냐?  무슨 격정 같은 게 없구나

  애로사항이라도?

-그냥 “성은이 망극하나이다”라는 소리 듣고 싶으신 게지요?

  간밤에 잠이 안 와서 어떻게 눕는 게 좋을까 궁리해봤는데...

  

     엎드리니

     편하네.

     옆으로 땅을 베고

     내가 늘 잘 때처럼

     그렇게 눕는 것보다

     반듯이 천장 보고

     하늘 안고 눕는 것보다

     이렇게 땅을 안고

     땅에 안기니 좋구나.

     가슴이 후끈하고

     홀쭉하던 배가 가득 차고

     다리와 정강이 발끝까지

     찌리찌리 기가 오고

     아, 내가 죽을 때라도

     이렇게 땅을 안고

     땅에 안겨 갈 것이다.

     죽어서 땅이 될 것이다.


      -이오덕, ‘잠 아니 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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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그게 무슨 형벌의 선고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뭘 좀 아는 듯이 말하네

  그때 가면 우리 더욱 가까워지지 않겠니?

-그만 가시게요?

-쟤들도 놀자는구나

  왜 다들 독대하자고 그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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