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인사
사랑이 늘 좋기야 하련마는
그래도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이라고 하지 않던가
삶도 그렇겠다 싶네
마칠 때쯤 되어서야 그렇게 노래하게 되네
실버 세대니 그러지만
Oh, life is golden 삶은 금빛
삶은 금빛 날개를 타고...
그리고 핏빛
소름 돋지 않는 좋기만 한 핏빛
풍수를 따질 것도 없고
맨 날 비낀 해 스러지는 빛만 보는 게 뭐 그리 좋겠는가
서향집에서 가세가 일어나기가 어렵겠는데
나는 석양과 낙조 차~암 좋더라
{그다지 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만하면 괜찮았다}
새떼들 솟아오르고
갈대 눕는다
대대 포구로 떨어지는 해
뻘 속을 파고드는데
묻지 마라
쓸쓸한 저녁의 속내를
만월 일어서고
별 하나 진다
-허형만, ‘순천만’-
여행 마칠 때쯤 되어서도 사진 몇 장 건지게 되던 걸.
{처음에 맘에 안 들었던 사진은 나중에 봐도 그저 그런데
지나고 나면 짐만 되는 걸 돈들인 게 아깝다고 끌고 다녔다
디카 시대, 골라서 저장하고 줄일 수도 지울 수도 있어 좋다}
“아이 좋아라” 했던 깨기 싫은 꿈도 지나가고
깨고 싶어 버둥거리던 악몽도 그리 긴 것 아니더라
기쁨이기도 했고 아픔이기도 했고
슬프다 면서도 속으로는 생끗 웃고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었는가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그래서 좋은
가을하늘이 그런 것
바람도 그런 것
다가와서 살랑살랑 흔들어놓고
그 흔들림 때문에 더 괴롭지도 않은
그렇게 좋았던 것들
이제 지나갔는가
아낌없이 버린다는 말은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말이리.
너에게 멀리 있다는 말은
너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는 말이리.
산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안 보이는 날이 많은데
너는 멀리 있으면서
매일 아프도록 눈에 밟혀 보이네.
산이 물을 버리듯이 쉼 없이
그대에게 그리움으로 이른다면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없어도 되리.
달 하나 가슴에 묻고 가는 시냇물처럼.
-이성선, ‘달 하나 묻고 떠나는 냇물’-
상고대 깔린 아침
저것도 괜찮다 싶고
좋은 것 가도
다른 좋은 것 또 온다는 생각으로 넉넉해진다
나무광에 장작 쌓여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올겨울도 따뜻할 것이다
오시지 않는다고
기다림을 접지는 않겠지만
때로는 품안에 안겨 뭘 기다리나 싶기도 하다
기다리는 님이 오지 않았기에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오지 않았기에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
기다리는 님은 오지 않았기에
나는 님을 누군지 알 것만 같다.
-김형영,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
내 사랑
내 님이시여,
내 안에 오심이 두렵사오나
이미 와 계시니
어이하리오.
님의 품이 곧 하늘이기에
내 감히 안길 수 없사오나
품어 안으시니
어이하리오.
-김형영,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