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의 정
그렇지 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그런 이름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네 곁에서 춤추던 존재들이 아니고
{꽃밭을 거닐던 때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게 다 제 꽃은 아니고
그냥 지나는 길가에 피어있었고 누구에게라도 웃었을 것이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나타났다가 가버렸는데
특별한 기억은 없어도 아주 흔적이 사라진 건 아니어서
수금지화목토천해명, 빨주노초파남보, 태정태세문단세, 12 14 104 101 91 46...처럼
연대별, 끗발 순으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 중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것들, 더 빛나는 것들은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수백 광년을 격하여도 워낙 밝다면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으로 미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산은 일곱 살에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라는 말을 뱉었다고 하여 신동 소리를 들었고
같은 나이에 너는 "산 속에 들어오니 산이 보이지 않는구나" 그랬다가
"쟤 좀 이상해" 소리를 들었다만}
이제는 다 떨어져 있으니 그리운 얼굴로 다가오는구나.
좋기만 했겠느냐 고운 사람들뿐이었겠냐 만서도
희미해졌기에 아련하기에 미움은 지워지고
반짝이는 별들이 되었구나.
{그 동심원들이 늘 평행을 유지하며 궤도를 달리는가 하면
네 구심력 때문일까 별들이 원심력을 잃어서일까
가까이 다가오다가 네 품에 떨어지기도 할 것이다.
드문 일.
별똥별이 수없이 떨어진다고 네 가슴을 태우지는 않을 테니까
염려 놓으셔.}
별은 별이고...
네 앞 밝히는 건 한 자루 초
사랑은 그렇게 불 하나 켜는 것
네가 켬으로 네가 뭘 좀 볼뿐만 아니고
세상이 조금 밝아졌으니
사랑은 그저 그만큼은 좋은 것.
부력을 얻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달려갔는데
날지 못했다.
활주로가 끝나고 벽이 가로막고 있네.
속도를 줄이니 고꾸라질 수밖에.
넘어졌다고 죽는 건 아니고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고 반드시 누웠더니
자운영 꽃보라 같은 하늘에 청자빛 이내 어른거려 어지럽고
싸리비로 댓돌 쓰는 소린가 쏴아 하는 바람에 소름끼친다.
말할 수 없는 세월에 눈물도 만들지 못했는데
웬 회개는...
그래도 오늘은 좀 흘러야 하지 않는가.
{그때는 물살 빠르다고
지금은 깊고 넓어
건너지 못하는데
강 따라 그렇게 내려갈 수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