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봉에서
아무와도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인사 나눈 적 없는 사람인데
혼자 가는 길에 천왕봉 올라가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누가 “‘안’이 아니라 ‘못’이겠지”라고 빈정거릴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신 포도는 안 먹어”라고 초라한 변명을 해댈 이유도 없다.
계영배(戒盈杯)의 교훈까지 들먹일 것 있겠는가, 고도로 치자면 칠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웬만큼 올라가서 등성이 따라 걸으면 될 일.
철쭉제?
지자체의 무슨 축제가 번번이 ‘한창때’를 놓친다 해도 ‘한 철 장사’를 포기할 수는 없을 터이고
갈 데 찾는 사람들은 몰려올 것이다.
그러니 일출을 보겠다는 야무진 꿈 없더라도 일찍 나서는 게 상수.
꼭 철쭉을 보러 온 걸음이라면 혹시나가 역시나로 비극 예감의 적중에 부르르 떨었겠지.
‘철쭉’은 왜 거길 가냐는 물음에 대답할 명분이었을 뿐.
충돌의 위험이 없다면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일? 흥분된다.
좀 있다가 이불자락 걷듯 꼼지락거리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상기 아니 일었느냐?”는 우쭐댐.
고도계(高度計)로 측정할 것도 아니고 높이에 따라 수목의 식생대(植生帶)가 달라지니까.
그래도 꽃 보면 좋더라, 그러니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했겠지.
꽃들 들여다보면 꿀을 내준다며 벌 나비 개미에게 찢겼더라고.
{쓸데없는 생각인 줄 알지만... 개체보존은 본능이고 종족보존은 의무일까?}
평지에서는 사라진 철쭉이 군락지(群落地)에서는 명맥(命脈)이나마 잇는달지
‘거기’까지 이르니...
“오늘까지는 그대를 기다리려고 했거든요”라는 애가 있었다.
숨질 때까지는 기다린다.
눈을 못 감겠다? 만남은 오지 않은 게 아니고 지나간 것.
억울하지만 내려놓으시게.
그때 좋았다고, 이미 좋았다고, 그만하면 됐다고.
내려가는 길은 터덜터덜.
{왜 돌은 박아놓았지?
올라갈 때 편하라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너덜길 내려갈 때는 무릎에서 출렁거리는 소리 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