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
“나리가 아니라 원추리야”라고 그러자
너는 미안하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그렇게 불러달라면 그러겠지만”이라고 그랬다.
이름이 중요해서가 아니고 네가 나를 너무 모른다는 게 섭섭해.
몰라도 사랑하면 된다고?
사랑하면 알게 되지 않는가?
알 수 없는 부분이 남겠지, 그러니까 더욱 사랑해야겠지.
너는 꽃을 좋아했지 원추리를 사랑한 게 아니었구나.
네 앞에 마침 내가 있었던 것이지 나라야 했던 게 아니었구나.
아무 꽃이면 어때, “너 참 예쁘구나”라는 말로 희롱할 권리를 얻은 줄 알았지?
호젓한 산길 여간해서 사람 구경하기 힘든 데 사는 죄로
지나쳐가려는 네 눈길 끌자고 아양을 떨었던 모양이구나.
내가 죽일 X?
때깔 곱기로 치자면 나리보다 못한 줄 알지만
날더러 “어머 이 나리 좀 봐”하는 소리는 듣기 싫어.
나는 나야.
나를 나로 알아주는, 그런 눈길 한번 던지고 그냥 지나가더라도
뒷모습에 대고 확실한 웃음 던져줄 텐데.
그리고, 나 벌렸다고 들어가기 쉬우냐 하면
그렇지 않아.
진하지도, 엷지도 않은 수수한 색깔로
잎보다 줄기를 뽐내며, 꽃대가 훤칠한 게 좋다.
아침 햇살에 새로 꽃을 피우고
바람 잔잔한 날엔 웃음을 날린다.
내가 원추리꽃 앞에 서면
향기보다 색깔이, 색깔보다 웃음에 늘 눈이 끌린다.
-박희연, ‘원추리’ 중-
존재를 나타내자고 짙은 기운 뿜을 것 없다.
{그 짙은 기운이란 결국 ‘살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