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늦게 들어와 인사드리는데 “내 물을 게 있는데...” 하셔서 좀 긴장이 되었다.
-‘달무지’라는 말이 있던데 무슨 뜻이냐?-
(일단 안심)
-‘달무리’라는 말은 있어도 ‘달무지’는 모르겠는데요.-
(내가 달무리를 모를까봐... 마뜩찮은 표정)
-그럼 “에헤라 달공”할 때에 ‘달공’은 무슨 뜻이냐?-
-그건 선소리꾼이 선창할 때에 추임새나 후렴으로 같이 따라붙는 것이지
‘달공’이 따로 뜻을 갖는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대답이 잘 되지 않았는지 턱을 움직이시는 게 “쩝쩝” 소리를 내시려는 것 같다.)
-한옥을 지을 때도 기둥을 세우기 전에 땅을 다지기 위하여... 그리고 산역할 때도...-
-‘달구질’ 말씀이군요.-
-넌 그걸 어떻게 아니?-
-알려니 해서 말씀 꺼내신 거잖아요?-
(그래서 얘깃거리가 잠시 이어지다가 잠드셨다.)
일찍 기독교에 입문하고 목회자로 일생을 보내셔서인지 망백의 연세를 누린 어른이시나
옛 풍습-그게 무속 50% + 불교 30% +유학 20%쯤의 배합일 거라-에 대해서는 밝지 못하시다.
‘회다지’라는 말을 들으시고 또 “넌 그걸 어떻게 아니?” 그러신다.
상여소리나 회다지 소리를 이제 어디서 들어보겠나?
그리울 것도 없지만 사라져가는 거니까...
‘구글’ 검색에서
아니다, 향수 때문은 아니다.
옛 노래 복각판 찍어내라는 것이 아니고
잘 모르지만 한 구절만 듣고도 가슴이 벌떡벌떡 뛰고 (주책없이 아래까지도) 어깨가 들썩거리는
새 노래 들어본지 너무 오래 되었다는 얘기.
노래가 없는 걸까?
부를 소리꾼이 없는 거다.
제대로 내는 소리 좀 들어봤으면 좋겠네.
우린 명창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잖니...
몇 해 전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나타날 때에
이제는 김대업 같은 소도구를 이용했던 간지(奸智)를 들어 ‘원인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싶겠지만
그리고 ‘국민의 선택’에 대해서는 “그야 우리가 속았으니까” 하며 “내 탓이오” 하지 않겠지만
꼭 그랬던 게 아니고
사기 친 것도 아니고
속은 것도 아니고
그는 ‘새 노래’를 불렀거든.
이제 와서 얘긴데
문제는 ‘노래’가 아니고 ‘가수’라고.
신곡이 쏟아져 나오겠구나.
차트 순위에 오르자고 흥행사들이 난리치겠구나.
아무 노래면 어때, ‘그’가 부른다면!
정치프로그램이나 대규모하드웨어가 만들어낸 변조인간이 아니고
솔숲 바람소리 같고 오월 말쯤 되어 하얀 꽃들이 발하는 냄새 같은
작고 여리게라도 그런 소리 낼 줄 아는 사람, 그런 가수 어디 없을까?
망자를 묻고 흙을 다지면서도 슬프지도 않나봐
자진모리로 팍팍 밟으며 “에헤라 달공”
먹은 지 오래 되었는데 할 일은 많이 남은 노동판에서
무슨 힘이 남아돌아 노래까지 불러대는지
그렇게 신명으로 함께 나아가게 하는
참한 선소리꾼 하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