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2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준다고 다 받아먹는가
노벨 문학상도 제 싫다면 다른 이에게로 돌아가더라.
{지난 해 한 권 더 내기는 했지만} 시집 단 두 권에
큰상은 싹쓸이했다.
내가 문인이라면, 시 나부랭이라도 발표한 적이 있다면
으그~ 질투와 자괴감으로 “너 죽고 나 죽자”로 나왔을 것이다.
친구는 전공실력, 인품, 행정능력 중에 떨어지는 데가 없다.
나이도 그만하고 인기도 괜찮아서 총장 감이라 하였고, 그도 마음이 있었다.
같은 과 교수로 고, 대, 원 줄곧 한 해 선배가 총장이 되었고
이제 그는 접어야...
3 김 시대에 정치인이라 했던 이들은 장수하는 족벌 보스에 가려 자라지 못했고...
문태준 또래의 시인들은 한숨 쉴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라이벌이 없이는 대스타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공자만 문자 쓰는 건 아니니까...
시를 읽는 사람들보다 시 짓는 이들이 더 많은 나라이지만
그래도 그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업그레이드 될 수도 있으니까.
받을 만 하던데
괜찮던 걸.
그는 ‘그맘때에는’ 외 15 곡으로 ‘제 21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강감찬, 강금실,... 식으로 가나다순이 아닌 다음에야
‘그맘때에는’이 꼭 메달 걸 목인지 얼핏 동의할 수는 없지만
빼어난 절창 하나만이 아니고 그의 노래들은 대체로 우수하다.
더러 과하게 포교사 티를 내기도 한다만.
{그 이데올로기도 극복해야 될 걸?}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 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꾸어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빈집의 약속’-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 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산수유나무의 농사’-
사진: 정석제
그는 수상소감에서 ‘샘을 치라는 말씀’으로 받겠다고 그랬다.
샘의 바닥을 치고 한참을 쪼그려 앉아 기다리면 저 안쪽으로부터 가늘고 맑고 찬 물줄기가
샘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샘의 안색이 바뀌는 그 참으로 더딘 시간을 아무 것도
모르는 저는 하염없이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를 빗대기를 천수답의
작은 샘이라 할 것이요, 시 쓰는 일을 샘을 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수상작 모음에는 보통 선정이유서, 심사평, 작품론 같은 것과 더불어 우수상 수상작도 실린다.
다들 좋은 시인, 좋은 시이니까 애석하고 안됐는데,
한 여-‘여류’라고 그랬다가는 혼날 것이다- 시인에 대해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시가 예쁘고 사상이 건전하지만
{흠, 예전에는 “품행이 방정하고 타에 모범이 됨으로”라고 그랬지}
나이 값이랄까 한 경지 더 높아진다 그럴까 깊어간다 할까 그런 진전을 보고 싶다.
제가 가지지 않은 것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더 내놓을 게 있는데 향상이 두드러지지 않으면 좀 서운해지거든.
{내 아픔을 두고 후회처럼 하는 얘기...}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임독(任脈, 督脈) 타통(打通)을...
{아무래도 무협지를 너무 많이 보는가보다}
예쁘장하다고 늘 예쁘지는 않고
징그러워도 ‘징허게’ 다가오기도 하더라.
무슨 추미(醜美)랄까 그런 골계(滑稽)도 더러 섞이면 좋고.
뭐 예쁘기는 해야겠지
노래니까.
옛날 옛적에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플래카드 들고 데모하던 이들도 있었다만
그릇은 무엇을 담지 않아도 그릇이거든.
보물급이면 더욱이 담을 수가 없지.
무슨 ‘무의미 시’니 그런 얘기 아냐.
하기야 ‘무(無)’라고 아주 없음이겠느냐
뭘 모르겠으니 없는가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있음’을 ‘없음’이라 기만하지 말고
정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야.
‘암호 해독’이니 그런 말 쓸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