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 콜로라도의 가을 1 산
가을은 어디서라도 좋다.
가을이 분명한 계절로 따로 있는 데라면 거기서 가을은 참 좋은 때 아니겠는가.
저 사는 동네에서 가을 맞는 것도 좋지만 “어디는 뭐가 좋더라”에 혹해서 나설 수도 있고.
경치 좋다고 일부러 찾아갈 만한 형편은 아닌데
그동안 고생한 딸 한번 가봐줘야 할 것 같은 걸음에 보태어...
뭐 그렇게 된 여행이었다.
작년 이맘때 돌아보니 참 좋더라고. 해서 다시.
딸이 물었다. “산이 좋아요, 물이 좋아요?”
저네가 정착할 지역을 정하는데 아빠 좋다는 데를 참고사항으로 하겠다니 고맙지 뭐.
{다른 얘기지만, 지내보니... 착한 딸이라도 아내 같지는 않은 것.
따리삼아 말해봤자 “몰랐어? 이제 와서...” 그럴 것이다.
눈꼴실 정도는 아니다. 제 서방에게 잘해주면 되지.}
樂山樂水라지 않던가.
딱히 고르자면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가 좋겠네.
그리고 물에는 산이 없지만 산에는 물이 따르니까!
미국이나 캐나다에는 웬만한 데에서는 산 구경을 못하고
있다 하면 ‘굉장히 큰 산’인데 거기까지 찾아가는 건 한 해 한 차례쯤의 먼 걸음이고
한국에서처럼 ‘마을 뒷산’ 같은 게 없잖니.
산 좋다고 외딴 곳에서 살기는 좀 그러네.
큰 산은 참 좋다.
맨 꼭대기에 오르지 않으면 어때?
바라보기만 해도 좋고 산에 기댔거나 어울리는 모든 것들이 다 좋다.
꽃만 찾는 건 아니지만, 산에는 꽃이 피네 갈봄여름 없이 꽃이 피네.
밤에는 산이 들로 사람 사는 동네로 살금살금 내려와서 덮어주는 것 같다.
‘海不讓水’, 인사동 공중변소 벽에도 걸려있을 정도로 다 알만한 말.
바다는 어떤 물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그래도 통치권자의 ‘국정철학에 맞는 사람’이라고 검증된 老怪들 골라서 가까이 두더라고.}
그 말 제대로 옮기자면
海不辭水 故能成其大, 山不辭土石 故能成其高. 管仲 얘기.
비슷한 얘기가 史記 李斯 列傳에도 있다.
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황하와 바다가 잔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고 받아 깊게 될 수 있었다? 그렇겠네.
그런데 말이지, 태산이 이런저런 흙을 가리지 않아 그렇게 커질 수 있었던 것? 그게 좀...
티끌 모아 태산이라, 그것도 좋은 말씀이고 중산층 저축 독려에 딱!이지만, 태산이야 되겠나?
난지도에 쓰레기 쌓아 하늘공원 이룬 것 인정하지. 假山은 그런데
큰 산은 쓸어 모아, 쌓아 올려 되는 건 아니더라고.
불쑥 솟아야 되던 걸.
하늘이 낸다고 그러던가?
아무래도 좋다.
어느 섬이 재벌 독점 사유 휴양지가 되었다? 능력 있어 그런 걸 배 아파할 건 없다.
큰 산? 그건 누가 가지지 못하더라. 네 것 아니고, 내 것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
그러니 내 것이기도 하겠네.
아,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그렇다고 “여기가 좋사오니”로 퍼질고 있을 수는 없지.
내려올 때도 당당히, “슬픈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