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접질린 발목 잘 낫질 않아 주물럭거리다가
다친 발목을 끌고 향일암 간다
그는 여기에 없고
그의 부재가 나를 절뚝거리게 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는 동안
절, 뚝, 절, 뚝,
아픈 왼발을 지탱하느라
오른발이 더 시큰거리는 것 같고
어둔 숲그늘에서는
알 수 없는 향기가 흘러나오고
흐르는 땀은 그냥 흘러내리게 두고
왼발이 앞서면 오른발이 뒤로,
오른발이 앞서면 왼발이 뒤로 가는 어긋남이
여기까지 나를 이끌었음을 알고
해를 향해 엎드릴 만한 암자 마당에는
동백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그 빛나는 열매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안개 젖은 수평선만 바라보다가
절, 뚝, 절, 뚝, 내려오는 길
붉은 흙언덕에서 새끼 염소가 울고
저녁이 온다고 울고
흰 발자국들처럼 산딸나무 꽃이 피고
-나희덕, ‘절,뚝, 절, 뚝,’-
시작은 문태준 때문이었다.
부처님 맨발이 어떻다고? {곱기야 했겠냐만}
점 하나 찍힌 줄 모시던 사람들은 몰랐더랬지
눈물 한 방울 그렇게 떨어진 줄을.
그러다보니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이어지지 않았겠어?
“맨발?” 하면 “맨발의 이사도라”가 빠질 수 없지.
춤추는 이들 얘기로 나갈 것 같으면 그 왜
“정상에 선다는 게 나이롱뽕으로 되는 줄 알아?”의 교훈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 있지?
피땀 흘려야 된다는... 강수진의 발.
요즘이야 발뿐인가 허벅지까지 다 보여줘도 일 없지만
「녹색 장원(Green Mansions, 1959)」에서 맨발로 다니는 Audrey Hepburn 볼 때 좀 그렇더라.
「쓰디쓴 쌀(Riso amaro, 1949)」의 Silvana Mangano, 음 또 Claudia Cardinale
그렇게 나가자면 이태리 여우들 Sophia Loren, ~ 때문에 망한 Gina Lollobrigida
아휴 저 발들 좀 봐.
그리고 Marlene Dietrich (「Morocco」, 1930)
일찍이 조병화(‘사막’) 일렀으되
사막엔 지금도 마리네 디트리히가 신발을 벗은 채
절망의 남자를 쫓아가고 있다고 하더라
조선 땅은 비사리(毘舍璃) 같지 않아서 맨발로 다니긴 어렵거든.
그때 동숭동에 별난 후배 녀석이 맨발로 출몰했는데
“왜 한여름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니느냐?”고 그러면
“여름에 오버를 입은 게 아니고 겨울에 입었던 것을 벗지 않았을 뿐”이라고 대꾸했다.
겨울에도 맨발로 다닌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씨부렁거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바닷가에서는 신 벗을 수 있겠네.
서해안엔 굴 껍질 때문에 맨발로 걷다가는 걸레 되기 십상이지만
고운 모래로 덮인 데가 아주 없진 않아서
사구(砂丘)를 올라갈 때는 싸락눈 깔린 장독대 가는 길 첨 밟을 적 소리 나고
젖은 모래에 발자국 남기자마자 지워버리는 밀물의 빗질이 음~ 쾌감이 그만일세.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가 그랬지
우리가 가고 나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이 남는다고.
Lives of great men all remind us
We can make our lives sublime,
And, departing, leave behind us
Footprints on the sands of time;
-A Psalm of Life-
그런가?
끝말 이어가기 끝나지 않았고 도미노는 아직도 넘어지고 있지만
“높으면 백두산”까지 갔으면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부르고 자자.
나 발 아파.
멀리 있는가?
내 발 낫게 해주면
그 예쁜 발에 입맞춰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