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기행
“서로 믿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는 소망사항이지만
‘우리나라 좋은 산수’이기는 한 것 같다.
아주 작은 땅이라서 {그만큼 아기자기하달 수 있지만}
맘먹으면 어디라도 하루에 다녀올 수 있다.
내 차 없는 사람이라도 통영을 오가는 시간 다 합쳐서 하루가 안 지나데.
해돋이에 산양해안도로를 돌고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서 도다리쑥국과 전어밤젓으로 아침을 들었다.
시장 둘러보고
전혁린 미술관에 갔다.
만 92세의 노인이 벽 크기에 맞먹는 그림-왜 ‘호’로 계량하게 되었을까 몰라-을 ‘작업 중’.
좋으시겠다, 누릴 만한 건 다 갖추셨네.
걸려 있는 사진에 ‘1945년 가을 통영 문화협회 시절에’ 해놓고
박재성, 김춘수, 윤이상, 배종혁, 옥치정, 김용우, 유치환, 전혁림, 정병윤 등이 들어있다.
‘그림’이야 어떻게 구매하겠는가, 컵 하나 사들고 나왔다.
남망산 공원에 올랐다.
통영시민문화회관은 공휴일이라고 닫았다.
전망은 좋지만 바다라기보다는 호변에 다닥다닥 붙여지은 집들 같아서...
다도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겠으나 섬들이 돌아가며 차일을 치는 바람에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트임’이 아쉽다.
왜 조각공원이라는 이름은 붙였는지...
아니 저 충무공 동상은? 그렇게 단신이셨던가?
‘자연’은 괜찮은데 ‘문화’는 왜 그 모양인지?
동백 없으면 울 뻔 했다.
뭐 동백 때문에, 그러니까 동백을 위하여 한번 곡을 하긴 했다.
새남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수급을 모아다가 합동위령제를...
극락왕생하소서.
시들어서 떨어진 게 아니라서
낙화암에서 떨어진 삼천 궁화처럼
떨어졌어도 아직 곱길래
그렇게 집단매장하기에는 각인각색의 미녀들인지라...
청마문학관에 들렸다.
{이만큼이라도 차려놓은 데가 많지도 않겠으나
그러니 청마는 그래도 유복한 처지라 하겠으나
칼부림 한번에 찬탈했던 자가 생전에 차려놓는 기념관에 비하면...}
이영도 님에 관한 자료는 남은 가족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선가
흔적 남긴 정도이다.
{청도 시조문학관에 가면 좀더 볼 수 있을까?}
점심은 멍게비빔밥, 병어회와 밴댕이젓이 반찬으로 나왔다.
청마 거리? 그거 말도 안돼.
우체통 옆에 작은 시비 하나 있기는 하다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것도 그렇다.
우체국에서 밖에 노촌 부스 하나 가설하고
거기서 엽서 한 장 써서 특별 일부인 찍어 보내게 하든지
앞에는 1945년에 열었다는 이문당 서점이 그 동네 수준으로는 별날 만큼 화려한 건물을 자랑한다만
참고서 류나 팔게 아니고 Barns & Noble 풍의 카페 코너와 통영 예인들 스페셜 서가 하나 내면 안 되겠냐고?
통영 정말 별난 데라고.
알만한 이름 나오는 대로 불러 봐도 김상옥, 김춘수, 김형근, 박경리, 유치진, 유치환, 윤이상, 전혁림...
(잠시 머물던 사람들까지 치자면 이중섭, 백석도 꼽을 수 있겠네.)
진주, 삼천포를 한 권역으로 묶으면 또 몇이 추가될 그런 곳이다.
달아 공원 다시 들려서 봄 바다 내려다보고
반가운 매화는 어디에 피었는고...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할 게 없다.
그렇더라.
아름다운 경치라도 사람만은 못 해서
기껏 좋은 데 와서 생각한다는 게 당신과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와 떨어질 수만 있다면 지옥에라도 가겠다” 라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사람은 참 지독한 존재다.
아니지, 사람이 지독한 게 아니고
사랑이 지독한 게지
미움만큼이나.
거제도, 욕지도 갈 게 아니라면
유람선 탈 게 아니라면
밤까지 기다렸다가 혼자서 다찌집 가서 배 터질 것도 아니고
그만 돌아가자.
윤이상 음악제 때 혹 다시 들릴 기회가 있을까
꿈에 그리던 통영 그만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