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 콜로라도의 가을 2 잎

 

 

늦가을 바람 몹시 부는 날 가로수를 이탈한 가랑잎이 어지럽게 쏘다니는 자세와는 사뭇 다르다.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시위 후의 鋪道 같지도 않다.

눈보라 치듯 날리지 않고 잎들은 깃털처럼 천천히 trail(오솔길)에 내려앉는다.

그러고는 슬며시 자리를 옮겨 길을 치워준다. 떨어진 잎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발목까지 푹 빠진다든지 뒹굴고 싶도록 푹신할 것 같은 낙엽더미는 보이지 않는다.

가지는 이미 털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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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장 아름다운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 찾자면 더러 있겠지. {꽃보다 할배는 아니고.} 

꽃보다 잎? 그것도 말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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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생식기관인데 뭐가 그리 좋으냐고 친구가 그러더라마는...

생식기관은 흉한 건가?

그리고 종족보존으로 개체의 永存을 도모하는 모든 생물의 모든 기관은 생식기관 아닌가?

몸체 중에 특정대상이 눈여겨보게 되는 보다 아름다운 부분이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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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석 작사, 현제명 작곡 ‘가을’이란 동요 예전에는 제법 불렸더랬는데...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갈아입는다’는 말,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에 비길 건 아니라도, 참 좋게 들린다.

 

{‘가을’ 노래 때문에 딴 데로 빠지는데...

“추운 겨울 지낼 적에 우리 먹이려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

그때는 기독교 ‘세력’이 지금 같지 않았겠는데도

특정종교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노랫말이라고 하여 검인정교과서에서 빼자는 얘기도 없었고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 그런 시비도 없었다.

“아무렴 감사해야지”라는 겨레의 착한 마음씨, 그리고 교회가 인심 잃기 전이었으니까.}

 

때 되어 변함! 그거 무죄 아닌가?

때 맞춰 갈아입기.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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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Tannenbaum’이라는 독일 캐롤을 우리말로 옮기기를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잎

쓸쓸한 가을날에도 눈보라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잎“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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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사랑이 각별한 건 잎색이 변하지 않고 푸름을 유지해서이겠고

秋史의 ‘歲寒圖’에도 소나무! 그림만이 아니고,

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말씀.

늦게 시든다? 흠, 金富弼이라는 선비는 제 거처를 ‘後彫堂’이라 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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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시들고, 변하는데, 그게 어떻다고?

그래서 살게 되는 거라면.

제가 산다기보다, 제 할 일 다 하고 줄 것 다 주고 “그럼 이제 나는 가거니와...”

그렇게 잃고 떠남으로써 살리는.

죽음으로써 살림이 영원히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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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議員? 도대체 어쩌자고-이 그랬다. (‘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일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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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丹楓’, 붉은 한국 단풍-불행하게도 여기서는 Japanese Maple이라고 그러지만-이나

캐나다 國旗가 된 단풍, 또 Norwegian Maple 등을 기대한다면

콜로라도에는 단풍나무가 없다.

글쎄, 그렇게 고운 鮮紅色은 아니지만 Mountain Maple이라고 하는 나무는 꽤 눈에 띈다.

붉은 빛 잎들이 더러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主潮는 노랑이다. Aspen, cottonwood(미루나무, 포플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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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있으면 참나무가 자라니까.

그래도 팍팍하고 워낙 추운 데라 그런지 크게 자란 나무는 없더라.

아마도 첫 겨울을 맞을 아기 나무, 혹독할 텐데 잘 견디어라. 벌써 볼이 발갛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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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이름 불러 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스펜 密生地는 겨울 동안 荒凉한 띠로 남지만

가문비나무(blue spruce), 전나무(douglas fir), 각종 소나무 등이 산을 채워 초록으로 남아있다.

{보통 눈으로 덮여 하얀 산일 때가 많지만.

그야 Casa Bianca, 언덕 위에 하얀 집도 불이 나면 빨간 집, 타고나면 까만 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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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