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겨울

 


이제는 ‘동장군(冬將軍)’이라는 말조차 없어진 듯하다.

견딜 수 없는 추위가 수그러지지 않는 기세로 몰아치는 겨울이 언제 있었던가.

그러니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온다 해도 봄이 멀다 할 건 아니거든)”이라는 격려도 들을 수 없고

“또 살아났구나.  고맙게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네.”라는 영춘(迎春)의 감격도 없다.


자꾸 떨림, 웅크림, 기어듦, 그렇게 꼼짝 않음,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음...

그런 게 겨울이었다.

{시간이 가지 않아도 나이는 먹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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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무슨 물밑작업이 있었던 게다. 

{내가 껴들지 않아도 진행되는 일들이 많거든.}

드디어 내놓고 움직이고

또 움직이게 한다.


     가만히 귀대고 들어보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

     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


      -윤석중, ‘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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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이들에겐 봄이 가장 바쁘겠지만

고달프다고 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또 이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이니까...


     꽃놀이 달놀이 봄놀이

     봄놀이 들놀이 산놀이

     엄마 아빠 손목을 잡고

     들이나 산으로 놀러 가자


      -윤석중, ‘들로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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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없었던 사람들

겨울에도 돌아다니는 사람들

겨울 같지 않은 겨울도 지겨워 강남 가서 놀다온 사람들이

봄이 왔으니 또 놀겠다고 그러면

그건 좀 그렇다.


그때는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백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겨울 같은 겨울, 눈 속에 고요한 겨울, 움직이더라도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겨울이 있었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김용호, ‘눈 오는 밤에’ 중-


언제냐 하면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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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 한국에 돌아와 영어 이름의 ‘KTX’만 타봤지만

왜 “대전발 0시50분” 같은 거 있었잖아

중앙선 그 많은 터널 지날 때에 마침 불이 안 들어오면 어디서 주먹이 날아오기도 했고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 가는 십이 열차”도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는 게 아니고

그렇게 흐림이 느려도 되었던

빠를 수 없었던

그래도 괜찮았던

그래서 그리운 때를 말하는 것이다.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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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용악, ‘그리움’-    


그렇게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철길을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그런 시간이 그립다는 얘기다.


{나의 그리움을 추궁하는 이에게 대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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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이십 년을 살고서는 겨울이 너무 긴 데라고 여겨졌다.

텍사스에서 십이 년을 살면서 겨울이 그리워졌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여기도 겨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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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모르는 꽃들

손수건만한 스커트로 대강 가리고 다리를 뽐내는 애들

걔들도 종종거리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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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천후

{겨울이 없는데 동안거니 그런 게 있겠는가}

그리 되면 바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