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물
김기림은 “글쎄 봄은 언제 온다는 전보도 없이 저 차를 타고 도적과 같이 왔구려”라고 그랬다.
(‘봄은 전보도 안 치고’)
한 주일쯤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는 정치인처럼 가는 겨울이 심통 부리기도 했지만.
하늘은 늦봄인데
바람은 맵도록 차다.
{난 바람맞으면 눈물나, 걷잡을 수 없이.}
그래도 물오른 가지마다 “나 많이 기다렸어요.”라는 표정이다.
{“잘 났어 당신 아주 잘 났어”로 나오면 할 말이 아니지만}
그게 봄 되어 가지에 물 오른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거든.
{울릉도 고로쇠 아니라니까, 알간?}
‘봄물’은 “봄이 되어 얼음과 눈이 녹아 흐르는 찬 물”이라는 뜻이고
드물게는 “봄에 든 큰물(장마, 홍수)”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긴 절대다수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면 의미 추가나 변형도 이루어지니까.}
잘 쓰는 사람이 썼다고 다 잘 쓴 것도 아니고
저 보기엔 좋은지 버리지 못한 게 작품집에 버젓이 실리기도 한다.
“누가 그 아니랄까봐, 못 말려 천상병” 풍의 예쁜 실수는
소녀의 손에 묻히고 다닌 (크라운) 잉크 자국 같은 거니까 눈감아주기로.
{그는 ‘봄을 위하여’라는 시에서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그랬는데
이를 두고 “아니 시인이라는 분이 셸리와 바이런을 혼동하다니 정말 숙맥불변(菽麥不辨)이구먼.”
그럴 사람 없다. ‘구여븐’ 천상병. }
그런데...
봄물보다 깊으니라? 사랑이?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산(秋山)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뭇너니 잇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한용운, ‘사랑’-
빙하 퇴적물을 싣고 흐르는 로키 산의 물들은 비취색이라 깊어 보이는데
봄물도 연두색이기는 하겠으나 더 깊어야 할 이유?
물이 불기는 했으니까, 또 여간 차야 말이지.
{아니면 말고.}
그런 이 시려서 진저리치게 되는 ‘말씀’ 말고
이젠 다방 레지쯤하고 살짝 바람 쐬는{피는} 촌놈 노래가 좋더라.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 ‘봄날’-
나도 나왔다.
아직 꽃도 없고
겨울 거품 꺼지지 않은 채 흘러가는 강물도 옆에 없다마는
저 윤동주 군 같지는 않아서
무작정 외출하여 서성거리는 건 아니고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사랑스런 추억’ 중-
교회 가기는 너무 억울해서
“어쩌지, 말까...” 하는 중이다.
차기는 해도
바람 속의 봄도
이제는 맨살로 살랑댄다.
-구상, ‘봄맞이 춤’ 중-
눈물 많이 나는 건
안구건조증 때문이고.